노무현 대통령이 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미국이요구한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를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파병여부 결정이오는 12월 중순을 전후한 시기에 이뤄질 전망이다. 당초 이 달 중순까지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됐던 파병문제 결정을 늦춘 것은 찬반여부를 둘러싼 국민적 갈등 고조와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표에 따른 정국상황 등을 고려한 결과로 추정된다. 노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한미동맹과 경제에 미칠 악영향, 한반도 안보,파병 비용과 명분 등의 문제를 충분히 감안해 파병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라크 추가 파병문제를 둘러싸고 보.혁 집단 간 갈등과 분열 양상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결정하든 정치적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판단, 신중론으로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민단체연합인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은 최근 집회와 시위를 통해 이라크추가 파병 반대 운동을 전개했고, 재향군인회 등 115개 단체로 구성된 범국민구국협의회는 이라크 파병지지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등 보수와 진보 진영이 정면 충돌 양상을 보였다. 청와대 참모들도 파병 찬반으로 엇갈린 내부 기류를 드러내 국민적 갈등을 증폭시켰다. 정부가 최근 파병 찬성 쪽에 무게를 둔 듯한 각료들의 발언들이 잇따라 나온 가운데 한국군 파병 후보지로 유력하게 거론된 이라크 북부 모술지역의 치안평가를 놓고 내부 이견을 노출시킨 점도 신중론의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지난 달 말 이라크 현지에 파견한 합동조사단의 강대영 단장(국방부 정책차장)이 모술의 치안수준이 전반적으로 안정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발표하자 민간전문가 자격으로 조사단에 포함된 박건영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는 시간부족 등으로 조사가 허술했다고 주장, 정부의 입지를 약화시켰다. 박 교수의 발언을 계기로 정부 이라크 조사의 객관성 논란이 일자 청와대와 국회를 중심으로 재조사단 파견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파병여부 결정이 장기화되는 게아니냐는 관측들이 이미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발언, 이라크 파병 문제 결정이 유보되는 쪽으로 굳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노 대통령은 찬반여론이 첨예하게 갈려 있어 소신있는 결단과 강력한 추진력이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 재신임 국민투표를 앞두고 이 문제가 자신의 입지를 극도로 축소시킬 수 있다고 판단, 신중론으로 급선회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국방부 일각에서는 그 동안 노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인 10월 중순까지 파병문제와 관련한 정부 입장이 발표될 것으로 보고,파병에 대비해 다양한 검토작업을 벌이다 이날 `신중론'이 발표되자 연내 파병이 힘들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이날 파병결정 신중론으로 파병여부는 오는 12월중순을 전후한 시기에 결정될 것으로 보이며, 그럴 경우 연내 파병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문제를 자신의 재신임과 연계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국민투표가 예정된 오는 12월 15일을 전후한 시기에 정부의 파병여부가 공식 결정될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또 정부가 국민투표를 전후한 시기에 이라크 파병 쪽으로 결정하더라도 한미동맹관계가 크게 훼손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모술 지역을 관할하는 미군 101공중강습사단이 내년 2, 3월 교체되는 시기에 맞춰 한국이 추가로 파병해 줄 것을 강력하게 희망해온 미국의 병력운용계획 차질이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파병 결정이 12월 이후에 이뤄질 경우 이라크 파병을 준비하는 데 최소 3, 4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에 101사단과 원활한 임무 인계인수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이번 신중론의 이면에는 미국의 추가파병 요구를 수용하지않기 위한 명분 축적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시각도 국방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had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