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 구체안 내용과 의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3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자신의 재신임 방법과 시기에 관해 정리된 입장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의 입장은 정치개혁 등 특정 정책과의 연계하는 등 조건을 달지 않고 정치적 합의에 따라 재신임 자체를 묻는 국민투표를 오는 12월15일 전후 실시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국민투표 결과에 의해 자신이 불신임을 받았을 경우를 상정해 새 대통령 보궐선거를 내년 4월15일로 예정된 17대 총선과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 국력낭비와 국정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재신임 국민투표를 둘러싼 논란을 명쾌하게 정리하는 동시에 국민투표에서 재신임안이 부결되더라도 그 결과를 깨끗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복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천명한 셈이다.
노 대통령은 "12월15일 재신임 투표를 한 후 2개월간 각 당이 새 대통령 후보를 준비, (내가) 2월15일께 대통령직을 사임하면 그로부터 60일 이내인 4월15일 총선과동시에 대선을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불신임을 받게 경우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실시해야 한다는 정치일정도 제시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재신임을 받을 경우 연말에 내각과 청와대를 개편하고 국정쇄신을 단행하겠다는 새로운 국정운영의 구상을 밝혔다.
재신임을 전제로 정국의 조속한 안정과 민의수렴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국정운영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라도 12월15일을 전후한 시기에 국민투표가 실시돼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 비리를 정치권의 일상화된 부정부패 등 고질병의 하나로 인식, 기업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반복 등을 들어 "악순환 고리를 기필코 끊어내야 한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국민의 의혹이 있으면 과감히 몸을 던져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불법 정치자금 개혁 등 정치문화 개선을 재신임 제안의 `명분'으로 보강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이를 계기로 지도층의 도덕적 기준이 바로 설 수 있다면 남은 임기동안 국정운영을 통해 이뤄낼 수 있는 개혁보다 더 큰 정치 발전을 이루는 것"이라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고 재신임 요구에 어떤 조건도 어떤 의도도 없다"고 재신임 국민투표 자체에는 아무런 조건과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지 않다는 점을 거듭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원고외 발언으로 "정책과 연계하지 않는 게 좋겠다. 재신임 자체를 묻겠다"고 이 부분을 명확히 부연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법리상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정치적 합의가 이뤄지면 현행법으로도 가능할 것"이라며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요구하고 있으므로 합의는 쉽게이뤄질 것"이라며 현행법 테두리내 정치적 합의에 무게를 실었다.
청와대가 내부적으로 이번 재신임 의사 확인에 국한한 국민투표 관련 한시 특별법 제정 가능성을 거론하고 노 대통령도 11일 기자회견에서 국민투표법 개정 가능성을 예시한데서 변화된 입장을 보인 셈이다.
이는 자신의 재신임 의지가 정치권 논란으로 퇴색되고 법리논쟁으로 장기화하면서 소용돌이칠 경우 국정혼선이 가중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또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처음 재신임 제안이 나왔을 때에는 이를 즉각 받아들여 국민투표 조기실시를 내세웠다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재신임 찬성비율이 우세하게 나타남에 따라 비리의혹 규명 우선 등으로 선회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대해 '차단막'을 치며 여론을 환기하는 효과도 기대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노 대통령은 이날 재신임 명분으로 자신이 제시한 정치개혁과 관련, 지론인 지역구도 타파, 정치자금 투명화, 정당민주화 중 특히 지역구도 타파, 정치자금 투명화라는 `화두'에 초점을 맞췄다.
노 대통령이 지난 4월 국회 국정연설에서 정치권 스스로의 개혁을 강력히 촉구한 데 이어 또다시 정치개혁을 화두로 들고 나온 데는 그동안의 정치권 노력이 미흡했음을 간접적으로 지적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정치개혁 1순위 대상으로 꼽는 지역대결구도와 관련, "선거제도를 고쳐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며 국회의 결단을 거듭 촉구했다.
그러나 소선거구제의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 이같은 선거제도 등을 전제로 내년 총선을 치른후 총선결과 다수당 또는 다수 정파연합에 총리 지명권 부여 등 앞서밝혀왔던 사항들을 다시 적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노 대통령은 "지역구도는 결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내년 총선에 앞서 지역구도 타파의 전기를 마련할 선거제도 변화가 있을지, 또 정치권과 여론의 반응이 어떨지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또 정치자금과 관련, "원천적으로 비정상과 편법을 강요하는 구조"라며 정치자금 불법의 반복이 현행 제도상 모순에 따른 결과라는 판단을 토대로 ▲합법적인 정치비용 상향 조정 ▲선거공영제 확대 ▲정치신인의 합법적 정치자금 모금 기회 부여 ▲수입과 지출 투명화 ▲불법에 대한 처벌 강화 ▲정치자금법 공소시효 연장 등을 개혁방안으로 제시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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