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재신임을 묻겠다"는 10일 발언은 당초 예고되지 않은 `폭탄선언'이었다. 이날 오전 10시30분께 윤태영(尹太瀛) 대변인이 감사원장 지명자를 발표한 직후"대통령이 기자실을 직접 찾아와 최근 현안에 대한 브리핑을 하겠다"고 전달하자 기자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청와대 안팎에선 최도술(崔道述) 전 총무비서관의 `SK 비자금' 수수의혹 사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표명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았으나 `재신임'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한 분위기었다. 노 대통령은 10시55분께 춘추관 2층 브리핑룸에 문희상(文喜相) 비서실장,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 김세옥(金世鈺) 경호실장, 윤태영 대변인 등 최소의 참모진만을 대동하고 모습을 나타냈다. 회색 양복에 자주색 넥타이 차림의 노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단상에 오른직후 "오늘 예정없이 이렇게 특별히 자리를 마련한 것은 최도술 전 비서관 문제에대한 입장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노 대통령은 "최도술씨는 20년 가까이 나를 보좌해 왔고, 최근까지 보좌해 왔다"며 "수사결과 사실이 다 밝혀지겠지만, 그 행위에 대해 제가 모른다고 할 수 없다"고 말을 이어갔다. 이어 노 대통령은 "입이 10개라도 그에게 잘못이 있으면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런 불미스런 일이 생긴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린다"며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회견장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잠시 말을 멈춘 노 대통령은 "아울러 책임을 지려한다"며 내년 총선을 전후해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노 대통령의 회견을 지켜보던 일부 취재진이 휴대전화로 기사를 긴급 타전하며 잠시 분위기가 술렁이자 노 대통령은 "속보도 중요하나 이거(회견) 하고 하죠. 제가 흔들려서 말하기 힘들다"며 힘겨운 심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노 대통령은 중대 결심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인도네시아에서 최도술 전 비서 관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오래 생각하고, 그렇게 결심했다"고 말해 지난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기간 내내 최 전 비서관 문제가 자신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음을 시 사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국민들은 수사결과가 어떻든 저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고 강조하고, "모든 권력수단을 포기했으며, 도덕적 신뢰만이 국정을 이끌 밑천"이 라며 "이 문제에 적신호가 와서 국민에게 겸허히 심판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국민은 의혹없는 깨끗한 대통령을 원하고 국민의 심판을 통 해 사면받은 대통령을 원할 것" "어정쩡한 태도로 책임을 모면하려면 국민이 무슨 희망을 갖겠나. 정치개혁이 어떻게 이뤄지겠나"며 도덕적 신뢰 회복을 선결과제로 꼽았다. 노 대통령은 아울러 마무리 발언을 통해 "심판을 받을 것임을 말했으나, 재임하 는 동안은 최선을 다하겠다" "기존에 해온 국정방향과 그 원칙을 조금도 흐트리지 않고 책임을 다하겠다" "총리가 더 책임있게 잘 보좌하고 국정을 이끌 것"이라고 강 조하면서 앞으로 빚어질 수 있는 국정혼란 가능성을 경계했다. 노 대통령의 회견이 계속되는 동안 이를 지켜본 문희상 실장 등 참모진은 침통 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으며, 청와대 일부 관계자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 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예정됐던 통일.외교.안보관계장관회의, 이한호(李 漢\鎬) 공군참모총장 진급 및 보직 신고, 바가반디 몽골 대통령 접견 등의 일정을 차질없이 소화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김범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