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경제,안보, 대북정책 3분야를 중심으로 앞으로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획기적이거나 파격적인 제안.정책을 내놓기보다는 그동안 밝혀온 입장과 원칙들을 정리, 재확인함으로써 차분하고 안정적인 기조를 유지하려는 뜻이 엿보인다. ◇안보 = 권오규(權五奎) 정책수석은 "8.15 광복절이라는 맥락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광복이라는 담론을 담았다"며 자주국방에 관한 대목의 의미를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정부가 수립된지 55년이 됐고, 세계 12위의 경제력도 갖췄다"며 "이제 스스로의 책임으로 나라를 지킬 때가 됐다"고 자주국방의 당위성과 필요성을강조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이날 중점을 둔 것은 주한미군 재배치에 따른 국론분열과 안보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대국민 설득이라고 할 수 있다. 안보불안 해소와 관련, 노 대통령은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은 결코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니라 상호보완의 관계"라며 "자주국방을 하더라도 한미동맹 관계는 더욱 단단하게 다져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주한미군 제2사단의 재배치 등 전반적인 재조정은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안보상황에 맞춰 시기를 조절하도록 부시 미국 대통령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국론분열 현상과 관련, 노 대통령은 "주한미군 문제를 놓고 한쪽에선 주한미군의 일부가 축소되거나 배치만 바꿔도 안보가 위태로워진다며 재배치를 반대하고, 일부이긴 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주한미군이 나라의 자주권을 침해한다며 철수를 주장하는 등 국민들간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주한미군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우리의 안보를 언제까지나 주한미군에 의존하려는 생각도 옳지 않다"며 특히 "미국의 안보전략이 수시로 바뀔 때마다 우리의 국방정책이 흔들리고 국론이 소용돌이치는 혼란을 반복할 일이 아니므로 현실의 변화를 받아들일 때가 됐다"고 재배치 반대론측을 설득했다. ◇대북 = 북핵 6자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 전달에 주력했다. 노 대통령은 "핵을 포기하면 이웃나라들과 협력해 국제기구와 국제자본의 협력도 끌어들일 것이며, 그렇게 하면 새로운 동북아시대가 열리고 북한은 빠른 속도로발전해 평화와 번영을 함께 누리게될 것"이라고 청사진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6.15 남북공동선언은 남북한만의 합의가 아니며 세계를 향한평화의 약속이었으므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말해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대북정책 기조 유지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회장의 사망으로 불투명성이 커진 금강산관광사업에 대해 "계속되도록 하겠다"고 밝혀 이 사업에 대한 정부의 직.간접 지원 방침을 시사했다. 또 "우리는 현재 추진중인 각종 협력사업을 계속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해 개성공단 사업, 남북 철도.도로연결 사업 등의 지속 방침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은 이같이 남북공동선언 내용의 우리측 이행몫에 대한 준수의지를 밝힘으로써 북한에 대해서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서울 답방 등 북한측 이행몫의 준수를 간접 촉구한 셈이다. ◇경제 = 노 대통령은 "경제의 성공없이는 다른 성공도 어렵다"고 경제 제1주의인식을 내비쳤다. 앞으로 10년이내에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진입 목표를 거듭 확인하면서 민생문제에선 주택가격을 비롯한 부동산안정 정책의 지속을 강조하고, 노사문제에 대해서도 "노사간 갈등과 대립이 우리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도록 선진 노사문화의 정착을 위한 대책도 곧 내놓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 "개방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며 이미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칠레를 비롯해 주변국들과 자유무역협정 체결의 적극 추진 의지를 밝히고 다만 개방에 따른 농민피해 대책도 세우고 있다고 반대여론을 달랬다. 특히 청년실업, 신용불량자 문제와 함께 생활고로 인한 자살을 언급, "안타까운죽음을 접할 땐 참으로 가슴이 아프고 송구스럽기 그지 없다"고 말하고 "정부는 경제시스템이 무너지거나 성장 잠재력이 손상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왔으나 경제가회복되는 대로 빈부격차를 줄이고, 의지할 데 없이 죽음으로까지 내몰리는 사람들이없도록 사회안전망을 다시 정비하겠다"고 역설했다. 경제불안 때문에 우선 성장 잠재력 회복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으나 자신의지론인 `분배'에 대한 관심을 조만간 구체적인 정책으로 내놓겠다는 공약인 셈이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기자 marx0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