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사병이 고참의 강제 추행을 고민하다 자살하고 영관급 군의관이 간호장교를, 대대장이 사병을 성추행한 데 이어 사병이 여성장교의 숙소에 침입하는 등 군내 성범죄가 최근 한달새 무더기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이 요구되는 육군 3사관학교 생도가 절도행각을 벌이고 준장이 거액의 뇌물을 챙기는 등 사병에서 장성까지 연루된 총체적 군기문란과비리가 속출하고 있으나 육군본부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군내 비리에 대한 군 당국의 척결 의지를 의심하거나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나머지 사태를 확산시키는 군 수뇌부에 대한 비난여론도 만만치 않게 일고 있다. 29일 육군에 따르면 동해선 남북연결 공사를 맡은 모 공병부대 소속의 A 병장이소형 천막안에서 혼자 잠자던 여군 B 대위의 텐트를 면도칼로 찢고 침입해 배를 만지는 등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B 대위는 사건 당일 오후 A 병장을 불러 성추행 사실을 시인하는 내용의 자술서작성을 요구했다 거절당하자 수 차례에 걸쳐 발로 차고 각목으로 때린 데 이어 구덩이에 A 병장의 하반신을 파묻는 등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앞서 00부대 대대장 손모(46) 중령이 소속부대 사병인 A 이병(21)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성기를 만지는 등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지난 5일 00사령부 헌병대에 구속됐다. 지난 9일에는 경기 의정부에서 내무반 선임병으로부터 성추행당한 사실을 고민하던 김모(21) 일병이 25층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 자살했다. 대전 소재 모부대 병원장 A 중령은 부대 인근 음식점에서 술을 마신 뒤 노래방으로 옮긴 자리에서 부하 간호장교를 강제로 포옹한 채 입을 맞춘 사실이 지난 15일드러났다. 육군은 지난 13일 성범죄가 속출하자 참모차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대책반을 구성, 부대별 정밀진단을 통해 병영 내 성추행 근절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으나아직까지 가시적인 조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성추행 뿐만 아니라 군장성과 영관급 장교, 장교후보생 등이 가담한 비리와 범죄까지 연쇄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600억원 규모의 병영시설 등 이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특정 건설업체가 컨소시엄에 포함되도록 도와준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모부대 백모 준장이 지난25일 육군 검찰부에 적발됐다. 이모(40) 소령은 지난 20일 결별을 요구했다 "계속 만나주지 않으면 불륜관계를폭로해 군생활을 더 이상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한 내연녀를 목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 2일에는 육군 3사관학교 생도 이모(23) 씨가 모형자동차 경주장 사무실 유리문을 부수고 침입해 2천900만원 상당의 경주용 모형자동차 수십개와 부품 등을 훔친 혐의(절도)로 경찰에 붙잡혀 헌병대로 이첩됐다. 군내 비리와 범죄 등이 최근 통제불능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군기강이 문란해진 데 근본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엄정한 군기 확립과 상명하복이 요구되는 육군이 사상 처음으로 이달 다면평가제를 도입, 지휘계통이 문란해진 듯한 현상들이 속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지적도 나오고 있다. 육군은 진급과정의 투명성 제고와 공사구분 명확화 등을 목표로 지난 7일 중령-소장 진급 대상자들에 대한 다면평가를 실시한 이래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상관들의 다양한 `부하 환심사기' 행태가 표출됐다. 상관이 자신을 평가하는 부하 장교들을 점심시간에 수시로 초대해 식사를 제공하고 저녁시간에 술자리를 마련해준 것은 물론, 부인들까지 남편 진급운동에 나서고있는 모습들이 관찰되고 있는 것이다. 국방부 소속의 A 대령은 상명하복과 엄격한 지휘체계를 근간으로 하는 군조직특성상 다면평가는 지휘계통을 문란시키고, 군기강을 약화시킬 소지가 다분하다면서최근 범죄가 육군에 집중된 것은 다면평가제 실시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말했다. 다면평가제를 실시하지 않는 해.공군에서는 최근 군기문란 사건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육군과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 지휘관들이 군내 범죄나 비리를 은폐할 것이 아니라 신속하게 공론화해 유사한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은 것도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꼽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15일 "군내 성폭력은 위계적인 군내 관계와 폐쇄성으로 인해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국방부는 사건의 은폐나 축소가 아닌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대응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had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