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대북송금 새 특검법에 대해 한나라당이 24일 당초 입장을 번복, 본회의에서 재의키로 하고 의원총회를 통해 의견수렴에 나섬으로써 이 법안에 대한 표결처리 가능성이 높아졌다. 재의란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송한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경우 이유서를 붙여 재심의 해달라며 국회로 되돌려보내면 국회가 해당법안을 재심의, 의결하는 절차로, 의결이 이뤄지지 않고 계류되면 국회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폐기된다. 헌법 제53조는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는 대통령은 15일 이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고, 이 경우 국회는 재의에 부치고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을 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13대 국회시절인 지난 89년 3월9일 당시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이 국회에서 의결된 지방자치법 개정안 등 4건의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발동, 그해 12월19일 본회의에서 지방자치법안이 표결처리로 부결됐고, 노동조합법 개정안 등 나머지 3건은 재의가 이뤄지지 않아 13대 국회임기 만료일인 92년 5월29일 폐기됐다. 한나라당이 본회의에서 대북송금 새 특검법 재의에 나서기로 함에 따라 새특검법은 본회의 이전 심의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돼 여야간 표대결로 처리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본회의 안건 상정절차는 국회법 규정대로 국회의장이 여야 양당총무의 의견을 취합해 상정하거나 직권으로 상정하면 된다. 한나라당은 새 특검법이 상정될 경우 당력을 집중, 소속의원 149명을 전원 본회의에 참석시키고 자민련 등의 협조를 얻어 통과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나 101명의 소속의원을 거느린 민주당의 협조없이 단독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경우 민주당도 한나라당의 단독처리를 저지하려면 본회의장에 '부결정족수'인 75명 이상 출석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게 돼 민주당은 본회의가 열리는 31일 오전 긴급의원총회를 소집, 의원들의 출석을 체크하고 비상연락망을 가동키로 하는 등 한나라당의 급작스런 입장변화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당 김재두(金在斗) 부대변인이 이날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은 정치공세를 위한 재탕특검법 재의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대북밀사 파견설 등을 먼저 말하라"고 공세를 편 것은 이런 부담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하고 여당의 반발마저 우려되는데도 새 특검법 재의에 나서기로 한 데는 복잡한 당내 사정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지도부는 당초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새 특검법 본회의 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정쟁의 인상을 주지 않겠다는 차원에서 최병렬(崔秉烈) 대표가 지난 22일 긴급기자회견에서 `새 특검법 재의포기'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당내 강경보수파는 물론 상당수 의원들이 `지도부가 재의까지 포기하는 것은 너무 약하게 보이는 게 아니냐'고 불만을 표출했고, 23일 홍사덕(洪思德) 원내총무 주재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도 지도부를 공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최 대표와 홍 총무는 당일 오후 대책을 숙의한 끝에 재의 관련 입장을 번복키로 하고 24일 의원총회에서 `헌법을 잘 몰랐다'고 해명하고 당론을 최종결정키로 했다는 후문이다. 당론변경 여부와 관계없이 최 대표와 홍 총무 등 당지도부는 지난번 `150억+α' 특검법을 둘러싼 당론변경에 이어 또다시 지도력에 손상을 입게 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서울=연합뉴스) 문병훈 기자 bh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