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9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비록 소량이지만 북한의 핵재처리 완료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북핵 문제가 지금보다 더 심각한 국면을 맞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회 정보위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원이 북한 영변의 핵재처리 시설에서8천여개의 폐연료봉중 소량을 최근 재처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동안 여러차례 북한의 핵 재처리 가능성을 거론해왔지만 이날 언급은그중 수위가 가장 높은 것이어서 주목된다. 고영구(高泳耉) 국정원장은 지난달 3일 정보위 비공개 간담회에서 "폐연료봉 일부를 다른곳으로 옮겨 재처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사실 확인중"이라고 말했다. 또 국방부 정영섭 군사정보부장(육군소장)은 지난달 19일 "4월말 북한 영변 핵재처리 시설내 굴뚝 3개 가운데 1개에서 일부 연기가 나온 것이 식별됐다"며 "소량의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가동이거나 낮은 수준의 재처리 징후일수 있지만 한.미 양국은 본격적인 핵 재처리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미 핵 재처리 진행을 여러차례 공언해왔지만 우리 정부는 그동안 이에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4월 18일 "8천여개의 폐연료봉들에 대한 재처리 작업까지 마지막단계에서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고, 4월 23일 중국 베이징(北京) 3자회담에서 이근 북한 대표가 "핵재처리를 추진하고 핵무기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와 CNN이 전하기도 했다. 이날 국정원의 '일부 핵재처리 완료 추정' 언급에 대해 외교통상부 고위 관계자는 "영변 시설에서 연기가 나왔던 당시 일부 핵재처리가 됐다는 정보도 미국에서 나오고 있지만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는 않았다"며 "미국은 북핵 문제가 심각한 국면에들어가 있다고 보고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가정임을 전제로 "만약 핵 재처리가 일부 진행됐다면 그 자체로 미국이 설정한 '레드라인(한계선)'을 넘어섰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북핵문제에있어 악재임에는 틀림 없다"며 "미국의 대북압박 공세가 강화되면서 현재의 교착상태가 대결구도로 바뀔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관련, 북한이 핵재처리 진행상황을 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입증하면서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이후 새로운 '벼랑 끝' 카드를 내밀 수도 있다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군사제재를 불러올 '레드 라인(한계선)'을 넘지 않으면서현재의 교착상태를 깨뜨리고 미국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하기 때문이란 분석에서다. 그러나 미국은 북.미 양자대화 가능성을 일축하고 북한에게 '선(先) 핵포기'를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만큼 북한의 새로운 카드에 '대화' 대신 단계적인 '제재'로 맞설 공산이 큰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추승호기자 ch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