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비자금 150억원을 돈세탁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영환씨 집 거액 강도사건에 대한 경찰의 자체 감찰 결과 경찰 고위 인사가 비선을 동원, '철통보안 유지' '사건은폐'를 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경찰은 문제가 불거지자 당초 '신고전화에 의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었으나 조사결과 당시 청와대 파견 경찰관의 전화 한 통화로 사건조사가 철통 보안속에 특정 인맥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 자체 감찰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3월31일 김영완(50.해외체류)씨가 강도를 당한 뒤 청와대 민정수석실 경위였던 박종이(朴鍾二.46) 경감은 이승재(李承栽) 당시 경찰청 수사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수사적임자 추천과 보안 유지를 부탁했다. 경찰은 이 부분과 관련, 박지원 당시 청와대 정책특보와는 관련없이 박 경감이 친분이 있는 김씨의 부탁을 받고 개인적으로 이 국장에게 전화를 건 것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박 전 특보와 관련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국장은 이후 자신이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으로 있을 때 부하였던 이조훈 서울청 강력계장(현재 경찰대 교육중)에게 연락했고 이 계장은 박 경감에게 서대문서 강력2반장 이경재 경위를 추천했다. 이 국장은 이와 관련, "개인 민원 차원에서 부탁을 들어준 것이며, 상부 보고부분은 거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서대문서는 이 국장의 전화를 받은 뒤 "상부에서 다 알고 있는 사건"으로 판단하고 공식적인 발생.검거 보고를 전혀 하지 않은것으로 밝혀졌다. 이대길(李大吉) 당시 서울경찰청장도 김윤철 당시 서대문서장(현 강원 삼척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안쪽(청와대를 지칭)과 관련된 사건이니 보안에 특별히 유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감찰에서 밝혀졌지만 이 전 청장이 이 사건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정식 수사 계통을 거친 게 아니라 전적으로 개인 친분 관계에 의한 부탁의 연속이었다는 점이다. 또 경찰 범죄수사규칙상 보고대상 사건 및 기준에 강도사건의 경우 300만원 이상의 다액 강도에 대해서는 경찰청에 정식 보고하도록 돼 있는데도 이를 며칠이 지나서야 구두로 보고하는데 그쳤다. 이런 일이 빚어진 것은 권력 핵심의 지시에 약한 경찰의 생리와 경찰 내부의 기강 해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이를 두고 "당시 경찰 간부 누구든 박 특보나 박 특보와 관련된 전화를 받았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문제는 지연.학연 등에 기반한 경찰 내부의 파벌 조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 전 서울청장과 이 전 수사국장 등이 한결같이 호남 출신이라는 점을 두고 '호남 죽이기'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는 뒤집어 보면 당시 같은 지역 출신이나 지인들끼리 일종의 '비선'을 형성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편 청와대를 의식한 경찰 고위 간부들의 수사 개입 의혹이 밝혀지긴 했지만 김씨가 도둑맞은 무기명 채권 등의 성격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박 전 특보의개입 부분도 전혀 조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건의 본론에는 전혀 접근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이 애초 김씨가 박 전 정책특보의 비자금을 돈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고, 그가 거액을 도난당했다는 사실 때문에 주목을 끌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경찰고위 간부들의 수사 개입은 어쩌면 의혹의 곁가지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충원기자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