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5.15)과 한-일 정상회담(5.23)에 즈음해 미국 언론이 대북 강경론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한반도문제 전문가가 대북 강경론의 3가지 오류를 신랄하게 지적해 눈길을 끌고 있다. 뉴욕 소재 사회과학연구원(SSRC) 동북아안보협력프로젝트 책임자인 리언 V.시걸(Leon V. Sigal) 박사는 지난 23일 '보스턴 글로브'(Boston Globe)에 기고한「동맹국들은 부시의 대북 강압책을 거부한다」(Allies Resist Bush Arm-twisting on N.Korea)는 글에서 미국의 대북 강경론은 3가지 잘못된 인식에 근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걸 박사가 지적한 3가지 잘못된 인식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기로 결심했으므로 북한과의 협상은 쓸데없는 짓이다 ▲미국은 북한과의 약속을 모두 준수했지만 북한은 모든 약속을 어겼다 ▲북한과의 협상은 협박에 굴복하는 것이다 등이다. 그는 우선 북한이 핵무기를 갖기로 결심했다는 주장과는 정반대로 북한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할 경우 플루토늄 재처리 방식이든 우라늄 농축 방식이든 모든 핵 개발 프로그램을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완전히 폐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즉, 북한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고수하는 한 미국에 맞서기 위해 핵무기와 미사일을 보유하겠지만 미국과의 적대관계가 종식되면 이런 무기들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시걸 박사는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협상을 원하고 있음은 역사가 증명한다"면서 북한이 1994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제네바 기본합의에 서명하고 핵 시설을 완전히 동결한 사실을 예시했다. 미국은 북한과의 약속을 지켰고 북한은 약속을 어겼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시걸 박사는 잘못된 주장이라고 단호히 지적했다. 그는 제네바 기본합의 서명 직후 치러진 1994년 중간선거에서 미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클린턴행정부로 하여금 제네바합의 이행을 방해한 사실을 적시했다. 이에 따라 클린턴행정부는 제네바합의에 따른 대북 경제제재 해제 약속을 지키지 못하다 2000년에 가서야 일부 해제했고 올해(2003)까지 경수로를 짓겠다고 약속했지만 지난해 8월에야 겨우 기반공사를 위한 콘크리트 타설을 시작했으며 또 매년 중유 50만t을 제공하기로 한 것도 제때 스케줄에 맞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미국이 정치와 경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완전한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대북 적대시 정책을 계속 추구하는 것은 제네바기본합의 2조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부시행정부가 연일 강조하고 있는 '북한 위협에 대한 굴복 불가' 입장에 대해서도 시걸 박사는 '난센스'라고 설명했다. 그는 "골목에서 한 사내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지갑을 뺏는다면 그것은 공갈협박이지만 그가 들고 있는 방망이를 내주면서 '우리 야구 게임 한 판 합시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협박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북한이 1994년 제네바합의에 응한 것이나 현재 부시행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게임'이라고 시걸 박사는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kj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