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 노무현 대통령이 21일 5·18행사 추진위원회 간부들을 접견하면서 한 말이다. 취임 이후 크고 작은 국내의 '갈등과 분쟁'을 겪어온 노 대통령이 물류대란에 이어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논란,전교조의 반발과 공무원노조의 쟁의투표 결정까지 한꺼번에 접하면서 결국 속마음을 여과없이 드러낸 것이다. 이런 노 대통령의 위기감은 이익단체 등의 '불법'을 단호하게 대처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이 선회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날 강신석 목사(5·18기념재단 이사장),정수만 유족회장 등 5·18행사 추진위원회 간부 5명과 만났다. 추진위원회측이 지난 18일 5·18 묘역에서 한총련 학생들의 과격시위로 빚어진 불상사에 대해 청와대로 사과하러 온 자리였다. '진사단(陳謝團)'의 대표격인 강 목사는 "지난번 기념식에 참석해 불미하고 예의에 어긋나고 누를 끼쳐 죄송하다"며 "아무래도 뵙고 인사 드리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 찾아봤다"고 사과표명을 했다. 노 대통령도 처음에는 "의도한 일도 아니고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 목사가 "젊은 학생들이 혈기도 있고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광주에서 있었던 일은 너그럽게 생각하셔서 법적으로 문제 있더라도…"라며 한총련 사건을 봐달라고 하려는 순간 노 대통령이 말을 자르고 생각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마음이) 넓고 좁고의 문제가 아니고,기분이 상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다"며 "우리 사회가 더불어 살아가는데 각기 책임을 져야 하고,자기 행동에 대해 결과로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며,우리 사회 어른들도 젊은 사람들이 잘못하면 나무랄 줄 알아야 한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이어 "젊은 사람들 주장에 일리가 있더라도 그런 식으로 하면 사회를 어떻게 꾸려가자는 얘기냐"며 "처음 (묘역으로) 진입할 때 피켓시위가 있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내버려두라 했고,혹시 길이 막힐지 모른다고 해서 무리하게 뚫지 말고 우리가 돌아가자고 했다"고 밝혔다. 이 얘기 끝에 노 대통령은 "요 근래 제가 부닥치는 문제가 너무 어렵다"는 말을 꺼냈다. 노 대통령은 "이 문제 말고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가기능이 마비될 수밖에 없다"며 "전부 힘으로 하려고 드니,대통령이 다 양보할 수도 없고 이러다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재차 "개인적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며 "이 상황으로 가면 대통령을 제대로 못하겠다는 위기감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함성득 고려대 교수(행정학)는 "한 나라의 지도자는 기분 나쁘다고 다 말할 수는 없다"며 "감정의 절제는 성숙의 표시인 만큼 지도자는 언제나 감정의 평정,평상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한편에서는 "비록 정돈된 표현은 아니었지만 그 같은 발언에서 국익을 위해 고뇌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며 "순수하게 대통령의 입장을 이해해 줘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