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12일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권한대행과 오찬회동을 갖고 현대상선 대북지원 규명을 위한 특검제 도입과 경제불안 대책 등 국정현안 전반에 걸쳐 의견을 교환했다. 노 대통령은 특검법 처리 방향과 관련,"국내외를 막론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셨던 사람까지 포함해 철저히 밝혀야 한다"면서도 "특검은 하겠으나 해외문제는 조사하지 말자"며 특검 조건부 수용을 제의했다. 이에 대해 박 대행은 "특검법엔 민주당 요구가 많이 반영됐다"며 수정안 거부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은 또 "(공정위 부당내부거래 조사방침은)지난해 특정기업의 표적조사 의혹이 제기돼 국회에서 1년간의 조사계획을 연초에 모두 발표하도록 한데 따른 것"이라며 "기획조사나 표적조사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여야 영수회담에는 한나라당에서 당3역 등이,청와대에서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과 유인태 정무수석 등이 배석했다. 다음은 대화록 요지. ◆특검법 △노 대통령=특검은 하겠다. 국내외의 송금행위 직전까지의 자금조성 과정을 가감없이 밝히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송금자를 떠난 이후의 얘기는 외교문제가 된다. 밖의 것은 막도록 여야가 합의해 달라. △박 대행=특검은 어차피 국내에서만 조사하게 돼있다. 북한에선 하지 못한다. 공포하면 변협에서 능력 경륜을 갖추고 국익이 뭔지 아는 두 분을 추천하면 한 분을 결정하면 된다. △노 대통령=문제는 제도다. 법이 공포되면 자의로 수사를 중단하지 못한다. 조사하게 되면 누구를 만났는지를 알게 된다. 중국선 누구 만나고,북에선 누구 만나고 하다보면 외교문제로 비화된다. 그래서 북한과의 민감한 문제로 번질 수 있다. △박 대행=북한관계 조사를 안하면 규명이 안된다. 특검의 법적 의무와 양심에 맡기자. △노 대통령=북한과 만난 문제는 형사소추되지 않도록 명기하자.14일에 국무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문 비서실장=정치적으로 합의해달라는 얘기다. △노 대통령=대북거래에 관한 부분은 수사와 소추에서 빼달라. △박 대행=수사 대상은 남북정상회담 직전의 세 건의 송금사건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현대아산이 5억달러 대출받아 2억달러를 북에 송금했다. 3억달러의 행방이 묘연하다. 5년내내 했던 대북송금 문제를 밝히라는 게 아니다. △유 정무수석=민주당이 특검을 거부하다가 변화의 기미가 있다. △박 대행=거부권 정국으로 가면 예측불허 사태가 발생한다. 특검법이 통과되면 국회차원에서 정부정책을 돕겠다. 김형배 기자 khb@hankyung.com ---------------------------------------------------------------------- ◆SK수사 관련 △박 대행=흔히 개혁을 사정.처벌로 보는 경향이 있다. 개혁은 제도와 관행을 고치는 것이다. △노 대통령=조사한 것을 말릴 수도 없고 표적수사 의도가 없다는 얘기밖에 할 게 없다. 김진표 부총리와 이근영 금감위원장이 'SK수사와 관련해 발표시간만 늦추면 경제충격이 적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서로 협의한 후 검찰에 공식적으로 얘기했다고 하더라. 당시 수사검사가 이를 거절했다는 얘기를 검찰총장과 처음 대면한 자리에서 들었다. △박 대행=다음 (사정)차례가 삼성이나 두산이라는 얘기가 있다. △노 대통령=그런 소문이 어디서 나오나. 새로 짜지는 검찰 지휘부에서 그런 순서를 마련했을리도 없지 않나. ◆국정원장 선임관련 △박 대행=야당과 협조할 일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 △노 대통령=국정원과 청와대가 뒷문으로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주례보고도 없앴고 국정원 정보는 경제.외교 등 아주 중요한 것만 챙긴다. 박 대표께서 가까운 분중에 좋은 사람 있으면 추천해 달라. ◆검찰과의 토론 △노 대통령=검사들이 밀실인사.검찰장악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면 공개적으로 토론하자고 얘기했는데 처음에는 검사들이 그것을 안 받아들일 줄 알았다. 그런데 검사들이 덜컥 받아 걱정이 돼 나중에 비공개로 할까도 생각했다. 검사들이 그렇게 독한 마음을 먹은데 놀랐다. 결과적으로 내가 덕본 듯하다. 검찰은 이번에 꽉 쥐었는데 과거 정권의 경우 3년 지나니 모든 비리가 검찰에서 나오더라. 그래서 가까이 하지 않겠다. 검찰과 공정거래 하겠다. 부당 내부거래는 안한다. △박 대행=여야가 서로의 정치상품을 가지고 누가 잘 파는지 경쟁해서 정치수준을 한단계 높이자. ◆경제위기 관련 △박 대행=경제지표가 나쁜데도 대응이 민첩하지 않은 듯하다. 경제 관료들은 문제를 제기하면 꼭 핑계를 댄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순환국면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노 대통령=한번 더 챙겨보겠다. 나도 걱정이다. 실례로 선거때 동북아 허브 관련해 여러가지 계획을 짰는데 껍데기 밖에 없더라.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