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한국 정치인의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한국 여성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취임으로 한국인들은 그동안의 `집단적자기혐오'를 떨치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는 요지의 기고문을 미국 유력 일간지 뉴욕 타임스에 실었다. 25일자 뉴욕 타임스 사설ㆍ의견면에 게재된 `한국에서 민주 취임하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하버드대학 래드클리프 연구소 방문연구원인 정하연씨는 "노대통령을선택한 것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실천할 자격이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직후 정치에 입문했다"면서 "아버지는 주말이면 지역구의 결혼식과 장례식 등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의 집을 비우곤 했다"고 가족사를 회고했다. 정씨는 아버지가 박정희 정권의 몰락 후 민주적인 양당체제가 성립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과는 "더욱 억압적인 군부정권"의 등장이었다고 밝혔다. 그후 아버지는소속정당이었던 민한당의 세력이 위축되고 파산한 상태에서 질병까지 얻어 어려운시절을 겪으면서 늘 "한국인들은 민주주의 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고 정씨는 털어놨다. 정씨는 "돌아보면 이러한 아버지의 저주는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헤어나지 못했던 집단적 자기혐오의 증상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나름대로 진단했다. 정씨는 그러나 "오늘(25일) 노 대통령의 취임으로 우리는 비로소 민주주의의 정신이 우리것이 됐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씨는 노 대통령에게 이토록 자부심을 갖게 된 근거로 그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변호사가 된만큼 독재와 부패로 얼룩진 기득권 세력과 거리가 멀고 고질적인 지역감정의 타파를 위해 보장된 정치적 장래를 포기할 만큼 소신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정씨는 "노 대통령이 그간의 정치행적을 이유로 `바보'로 불리기도 했다"면서 "한 정치인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일어서고 이상을 실천하면서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바보라고 불렸다면 그것은 찬사"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이 미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과 진보적인 그의 성향 때문에해외 일각에서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정씨는 "미국에서는 `도대체 왜 한국인들은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하고 모든 전임자들과도 다른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나'라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의문에 대해 정씨는 "우리 한국인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른 누군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라고 자답했다. 정씨는 "우리는 전쟁의 위험을 잊었기 때문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나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미국을 증오하기로 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의견이 전세계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랬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우리가 민주주의를할 자격이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에 노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씨의 기고문이 게재된 뉴욕 타임스 의견ㆍ사설면은 이 신문 칼럼니스트들의칼럼과 주로 저명인과 전문가들인 외부인사의 기고가 실리는 곳이다. 뉴욕 타임스의명성과 필자들의 권위로 인해 이 면에 실리는 기고문의 영향력은 다른 매체 칼럼이나 기고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국 국가원수들까지 대중에게 자신의 의견을 알리고 싶을때는 종종 뉴욕 타임스에 기고를 보내곤 한다. 노 대통령이 특히 미국 일각에서 의구심의 대상이 된 데는 미국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질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미국 최대의 영향력을 지닌 뉴욕 타임스에 노 대통령에 대한 한국인들의 견해를 조리있고유창한 영어로 밝힌 기고문이 실린 것은 한국과 노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