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취임사의 특징은 '평이하고 명쾌한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다. '참여정부'를 표방하는 노 대통령의 특별주문에 따른 것이다. 특히 경제와 관련, "동북아시대는 경제에서 출발한다"는 등 미래지향적 청사진 제시에 주력했다. 노 대통령이 "동북아의 경제규모는 장차 세계의 3분의 1에 도달할 것"이라며 당초 원고에 없던 부분을 추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최근 핵심 현안으로 부각된 재벌개혁 문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기업하기 좋은 나라, 투자하고 싶은 나라로 만들고자 한다"는 원론적인 말만 했다. 표현 자체도 "시장과 제도를 세계 기준에 맞게 공정하고 투명하게 개혁하겠다"는 등 다소 완곡한 단어들을 동원했다. 이는 취임사의 상당부분이 경제문제에 할애됐던 5년전과 대조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취임 당시 최대 현안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극복이어서 △대기업 구조조정 △기업의 자율성 보장 △경제의 투명성 제고 등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당시 경제회생을 약속하기는 했으나 그보다는 '문민시대'의 개막을 강조하면서 부정부패 척결을 최우선 순위로 삼았다. 앞서 노태우 전 대통령은 5공과 뿌리가 같다는 부담을 털어내기 위해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민간주도 경제'를 내세워 박정희 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했었다. 새로운 정치풍토 조성을 유난히 강조한 박 전 대통령은 경제근대화와 부패척결에 역점을 두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