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23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롭게 등장하는 역사의 주역들에게 당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한다"면서 대표직을 사퇴했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11시 당사 기자실에서 장전형(張全亨) 부대변인만 대동한채 10분여 동안 미리 준비한 기자회견문을 읽고 곧바로 당사를 떠났다. 지난해 4.27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직선을 통해 1위로 선출된 한 대표는 당권을 가진 마지막 구체제 대표로 기록되게 됐다. 한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후보 중심체제로 당이 운영되면서 대표로서의 권한 행사가 제약됐고, 선대위와의 마찰과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는등의 이유로 대선후 당내 신주류측으로부터 지속적인 사퇴압력을 받아왔다. 최근 한 대표는 자신의 사퇴를 요구하는 신주류를 겨냥해 '개혁독재'라며 역공을 폈고, 대북송금 특검법에 완강히 반대함으로써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방패막이'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으나, 결국 대세의 흐름에 순응하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사퇴배경과 관련, 한 측근은 "한 대표의 전격 사퇴는 이미 오래전부터 밝혀온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취임전 사퇴라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대표의 전격적인 사퇴 발표는 일단 노무현 당선자 취임전 사퇴라는 대국민약속을 지키고, 구주류의 2선 후퇴를 선도함으로써 신주류에 당 운영의 주도권을 넘겨 노 당선자 중심으로 당이 운영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동시에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북송금 특검법과 고 건(高 建) 총리후보자 인준동의안 처리의 부담 또한 신주류에 넘기는 것이 된다. 비록 한 대표의 사퇴가 `자진'의 형식을 띠었지만 사실상 신주류의 압박이 작용했고, 전당대회에서 직선으로 선출된 대표가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남으로써 `당정분리'의 원칙이 훼손됐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당 관계자는 "선거이후 변화과정에서 대표가 사퇴함으로써 내년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또다시 지도부가 교체될 수 있는 빌미와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의 사퇴로 민주당내 동교동계 역시 현실적인 구심점을 상실하게 돼 당내발언권이 급격히 약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각자 사활을 건 생존경쟁을 벌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자신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한미정책포럼을 `US-ASIA 네트워크'로확대하기 위해 내달 중국과 일본을 방문하고, 자서전을 집필하는 작업에 몰두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