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북한과 미국이 서로 치열한 '시간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로 인해 한반도 정세는 미군의 군사력 증강 움직임과 맞물려 급속하게 냉기류가 확산되고 있고, 국제사회의 핵 문제 해결 노력은 표류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달 27∼29일 임동원 대통령 특사가 방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가시적 조치를 조속히 취할 것을 설득했으나 북한은 `북-미간 불가침조약 체결'을 통해서만 핵문제의 근원적 해결이 가능하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맞서 미국은 핵 문제를 풀기 위해 언젠가는 북한과 마주 앉기는 하겠지만,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지루하고도 위험한 게임'이 계속될 전망이다.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은 4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열린 북핵 관련 청문회에서 "우리는 그들(북한)과 양자 대화를 절대적으로 가질 것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북한과 대화의 시간표가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며 "한국에 안정된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확실히 그런 시간표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적어도 오는 25일 노무현 대통령 정부가 정식 출범하고, 새 정부의 틀이 어느 정도 갖춰지는 내달까지는 북-미 직접 대화는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같은 발언은 퇴임을 앞둔 김대중 대통령이 마지막 열정을 다한 임 특사 파견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2억달러 대북 송금 파문으로 몰려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추가적인 시도가 어려운 만큼 일단 새 정부의 출범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한국측의 사정과도 관련돼 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볼 때 최소한 한달 이상의 `시간 공백'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을 이용해 미국은 초읽기에 들어간 대 이라크 군사공격에 들어가 속전속결로 자신들의 군사.정치적 의도를 관철시키는 한편,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오는 12일로 예정된 IAEA(국제원자력기구) 특별이사회를 열어 NPT(핵무기확산금지조약) 탈퇴선언을 들어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는 절차를 추진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입장이 있는 만큼 유엔 안보리에서 곧 바로 대북 제재를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다자협의'를 통해 시간을 충분히 두면서 북한을 서서히 압박함으로써 북한의 `인내력'을 시험하려고 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미티지 부장관이 "우리는 물론 북한과 직접 대화를 가질 것"이라면서도 "그렇게 하기전에 우리는 이 대화를 가질 강력한 국제적인 기반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데서도 부시 미 행정부의 의도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미국의 입장이 이럴 경우 이 기간에 북한이 어떤 자세를 취할 지도 관심거리다. 지금으로서는 북한이 지금까지와 같이 미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북-미불가침조약 체결'을 주장하는 등 대외 선전전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핵 문제가 유엔 안보리에 상정되고, 미국 등 안보리의 압박 수순이 구체화될 경우 '제2, 제3의 선택권'을 강조해온 북한으로서는 5MW 원자로 연료봉 재장전이나, 방사화학실험실 재가동 및 폐연료봉 재처리, 나아가 미사일 실험 재개 등의 극단적인 대처로 나아갈 우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유 기자 l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