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 대통령 특사가 방북 기간에 일반적 예상과는 달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나지 못해 그 속사정이 주목된다. 지난 27일 방북한 임 특사는 약 48시간 동안의 평양 체류 기간에 김 국방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채 29일 오전 11시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 이날 낮 귀환한다. 임 특사의 방북 결과는 이날 오후 임 특사가 서울로 귀환해 봐야 그 구체적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김 위원장 면담 불발만 본다면 그다지 낙관적이지는 않다. 무엇보다 임 특사가 지난 27일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의 뜻을 북측 지도자에게 전하고, 북측 지도자의 의견을 들어온 게 제 임무"라고 밝혔던 점을 감안하면 제일 중요한 임무를 성사시키지 못한 셈이다. 김 위원장을 못 만난데는 우선 27일과 28일 2차례에 걸친 김용순 노동당 중앙위비서와 가진 회담에서 북한 핵문제와 관련, 남북이 `의미 있는' 의견접근에 이르지는 못하고 양측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데 그쳤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김 비서와의 잇단 회담에서 임 특사는 핵 문제에 대한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의 우려를 있는 그대로 전하는 한편, 핵 문제가 유엔 안보리 상정 등 다자구도로 넘어갈 경우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워지는 만큼, 이 시기와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며 조속한 시일안에 가시적이고 실천적인 조치를 취해줄 것을 촉구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반해 김 비서는 핵 문제가 다시 불거지게 된 것은 북한을 압살하려는 `미국의 음모'가 있는 만큼, 이 문제는 북-미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불가침조약을 체결해야 풀릴 문제이며 이 과정에서 `민족공조'를 특히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양측이 핵 문제와 관련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데 그친 것은 임 특사가 북측의 자세 변화를 끌어낼만한 카드를 내놓지 못했고, 북측도 의미있는 자세변화를 보이기에는 지금이 적절한 시점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을 공산이 크다. 임 특사의 이번 방북기간에 북측이 보인 태도를 보면 이미 김 위원장 면담이 쉽지 않을 것임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게 사실이다. 북측은 임 특사의 카운터파트인 김용순 비서가 2차례 공식회담에 응한 것 외에는, 대외 공식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면담 등 '의전적인' 회동에 만응했을 뿐, 핵 문제와 관련한 의미있는 회동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핵 문제의 핵심 담당자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의 회동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방북에 앞서 우리측은 강석주 제1부상과의 회동을 요청하고 당연히 기대했으나 북측은 임 특사와 함께 간 임성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강 제1부상 대신, 림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을 보내 회담을 갖게 했을 뿐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임 특사는 김 대통령의 친서를 김 위원장에게 직접 전달하지 못하고 김용순 비서를 통해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섣부른 판단은 이르기는 하지만, 이번 특사 방북은 기대 만큼의 성과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이 일정하게 제한되지 않겠느냐는 다소 비관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북측은 김 국방위원장이 김 대통령의 특사를 만나지도 않으면서 왜 특사 방북을 수용한 것일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일각에서는 김 국방위원장 등 북한 최고위층에서 임 특사가 들고 올 '보따리'를 기대했다가, 실제 만나보고는 실망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시각도 내놓고 있다. 정부 당국에서는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는 입장이다. 애당초 임 특사가 방북할 때부터 난마처럼 얽힌 북한 핵 문제의 명쾌한 해법을 만들어 낸다는 게 목표가 아니라, 그 `실마리'를 찾으려고 간 것인 만큼 지난 9차 남북장관급회담에 이어, 이번에 책임있는 양측 인사들이 핵 문제와 남북관계 현안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충분히 각자의 입장을 개진한 것만도 의미있다는 것이다. 임 특사가 김 위원장을 만나지도 못하고 서울로 돌아오기로 결심한데는 김 비서와 2차례 회담을 통해서 현 단계에서 끈질기게 요청해 만나더라도 진전된 성과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노무현 당선자측을 대표해 방북한 이종석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의 방북 활동도 예상만큼 활발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