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지도부가 차기 전당대회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대표대행체제로 전환하게 됐다. 대선패배 이후 고심을 거듭해온 서청원(徐淸源) 대표가 29일 이회창(李會昌) 전후보와 함께 당을 이끌었던 리더로서 대선 패배와 재검표 결과에 책임지는 차원에서 대표대행을 지명하고 당무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서 대표는 그러나 공식적으로 대표직 사퇴를 선언하지는 않았다. 당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의 구성원이 사표를 제출할 경우 현행 당헌.당규상 이를 수리할 기구가 없다는 근거에서다. 그래서 그는 내달 2일 미국으로 출국, 달포간 체류하는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대행체제로 전환토록 하는 형식을 취했다. 물론 서 대표가 기자회견 형식 등을 통해 대표직 사퇴를 공식 선언할 수도 있지만 `스케일이 큰 정치'를 지향해온 서 대표가 굳이 대표대행 지명이라는 형식을 취한 것은 다른 최고위원들의 입장을 배려한 것이라는 해석들이다. 자신이 사퇴를 선언하면 김진재(金鎭載) 하순봉(河舜鳳) 박희태(朴熺太) 이상득(李相得) 등 다른 최고위원들의 입지에도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지도부 공백'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3월 중순께로 예상되는 전당대회 때까지 대표대행 체제로 전환되며, 대표대행에는 임명직 최고위원인 이상득(李相得) 최고위원이 유력시된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당 정체성과 보혁노선 정립 등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세력간 갈등과 알력이 심화될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사실 서 대표의 이번 선언은 당내 개혁파 모임인 `국민속으로'의 지도부 인책론 제기가 직접적 원인이 됐다. 특히 일부 개혁파 의원들은 서 대표의 최근 행보에 대해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당 정개특위 공동위원장인 홍사덕(洪思德) 의원의 "경선 불출마를 선언한 최고위원들의 족쇄를 풀어주겠다"는 발언과 맞물려 불출마를 선언했던 일부 최고위원들과 함께 차기 전당대회 도전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반면 최고위원을 비롯한 당 중진들의 개혁파에 대한 불만도 점점 커지는 상황이어서 향후 지도체제 개편 및 당 개혁방안 등과 맞물려 갈등이 증폭될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실제 한 최고위원은 `국민속으로' 리더격인 이부영(李富榮) 전 최고위원을 겨냥,"자신도 선대위 공동부의장을 맡은 입장에서 누가 누굴보고 책임지라는 것이냐"고 비판했고 다른 중진은 "어차피 한나라당이 색깔을 분명히 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며 일부 개혁파들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피력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당 정개특위의 쇄신안 마련과 한나라당의 차기당권 경쟁은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당 지도체제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최병렬(崔秉烈) 김덕룡(金德龍) 강재섭(姜在涉) 박근혜(朴槿惠) 의원 등 유력 주자들의 물밑 경쟁은 이미 불이 붙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서울=연합뉴스) 조복래기자 cb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