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문제와 관련해 작기는 하지만 의미있는 자세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22일 오전 제9차 장관급회담 첫 전체회의에서 북한은 공식 기조발언을 통해 핵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함으로써 그동안 `핵문제는 조-미 사이의 논의사안이지 남북간의 논의사안이 아니다"라고 해온 기존의 입장에서 변화를 보인 것이다. 북측은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이유로 '미국의 압살책동과 국제원자력기구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자위적 조치'를 들면서 "핵무기를 만들 의사는 없으며 우리의 핵활동은 전력 생산을 비롯한 평화적 목적에 국한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주장은 이미 북한이 지난 10일 NPT 탈퇴를 선언한 정부성명에서 밝힌 내용들로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해서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북핵문제가 불거진 뒤 평양에서 열린 제8차 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의 핵문제 제기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면담을 통해 간략히 언급했던 점에 비춰보면 의미있는 변화로 평가된다. 특히 이번 장관급회담이 시작되기 전부터 정부는 핵문제를 집중 거론할 것임을밝히면서도 북측의 논의 기피 가능성 때문에 회담 내용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그렇기에 북측이 이번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핵문제를 자발적이고도 공식적으로거론한 것 자체는 자칫 핵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남측 대표단의 일방적 촉구로만 끝날뻔한 회담의 모양새를 갖추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북측의 이같은 변화는 우선 핵문제에 대한 공식 입장을 알리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령성 북측 단장은 전체회의에 앞서 이뤄진 환담에서 "쌍방의 입장을 대외에알리는 방향에서 공개적으로 하자"고 제의한데서 그같은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또 핵문제를 풀어가는데서 남측이 처한 `곤혹스러운 상황'에 대한 묵언의 이해와 함께 남측의 지원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현 정부는 중국.러시아.일본.미국 등에 특사를 보내 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재에온 힘을 기울이고 있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도 이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외교적 노력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측이 기댈 곳은 남쪽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따라서 민족공조의 연장선에서 남측과의 연대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돌파하려는 의도도 담겨져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남측 회담 관계자는 "북측은 회의에서 핵문제 해결에 남측이 필요한 노력을 해달라고 언급했다"며 "민족공조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북측이 장관급회담이라는 공식 채널을 통해 핵무기 개발 의사를 밝힌대목은 미국측이 거듭 요구하고 있는 핵포기 의사를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볼 수있는 것 아니냐는 다소 낙관섞인 견해도 있다. 이미 NPT 탈퇴 정부성명에서 밝힌 내용이지만 공식 회담석상에서 북측 수석대표의 발언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문제를 남북회담 테이블로 가져왔다고 곧바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남측은 해제된 핵동결의 원상복구, NPT 탈퇴 선언 철회 등 국제사회가 신뢰할수 있는 조치를 강조한 반면 북측은 핵동결을 해제하고 NPT를 탈퇴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봉조 장관급회담 남측 대변인은 첫 회의를 마치고 "북측이 핵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힘으로써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논의가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논의의 토대는 마련됐다"면서도 "핵문제는 (해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