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1일 5㎿ 원자로 봉인제거에 이어 22일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폐연료봉 저장시설 봉인제거, 급기야 23일엔 영변의 방사화학실험실 봉인제거에 착수함으로써 북핵 파고가 연일 높아지고 있다. 이같이 잇따른 실질적인 동결해제 조치는 넘어서는 안될 `금지선(red line)' 일보직전까지 육박했거나 이미 부분적으로 넘어선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핵무기 4-6개 제조 분량의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한 8천여개의 폐연료봉 저장시설의 봉인을 제거한 데 이어 핵재처리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 봉인까지 제거한 것은북한이 선전해온 `전력 생산용'과는 관계없고, 곧바로 실제 핵무기를 제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기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북핵 사태에 대해 "외교적 방법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한.미.일 3국의 대응기조도 변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23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거듭 확인해 왔지만 북한이 점점 더 핵무기 제조에 근접할 경우 `비외교적' 대응을 검토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부시 행정부의 한 고위관리가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도 "현 단계는 외교적 압박 강화 단계"라고 밝히고 있으나, 상황이 이처럼 급속히 악화하자 최악의 상황도 각오하는 표정이다. 정부는 그동안 북한의 원자로 봉인제거 이후 추가조치로는 원자로 재가동을 위한 연료봉 장전 등을 예상하면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의도로 해석될 수 있는 조치는곧바로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어왔다. 북한이 폐연료봉 저장시설 및 핵재처리시설 봉인까지 이처럼 빠른 시간내에 제거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북한의 의도에 대해선, 일단 과거 재미를 보았던 대로 핵을 담보로 북미관계 개선 및 북한체제 보장을 받아내는 협상 테이블로 미국을 끌어내겠다는 `벼랑 끝 전술'의 도박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또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직접 나서 추진한 북일 정상회담 및 신의주 특구지정 등이 진척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내부의 체제결속을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있다. 반면 이라크 사태 등을 지켜본 북한이 체제보장을 위해 실제로 핵무기 개발을본격화했다는 시각도 있다. 북한의 예상되는 다음 조치는 제네바 합의에 따라 건설이 중단된 50메가와트, 200메가와트 원자로 재건설 착수가 있지만,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된 용기에 밀봉된폐연료봉을 직접 개봉, 재처리에 착수하는 시점이 임계점인데 최근 움직임으로 봐선조만간 재처리 작업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갈 데까지 가기로 정해놓은 것 같다"면서 "준비된 계획에 따라 재처리에 착수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경우 북핵사태는 그야말로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향후 북한의 태도변화 여부와 한.미.일 3국의 대응,중국, 러시아의 중재노력 등이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황재훈기자 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