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는 앞으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까. '김대중-김영삼', '김영삼-노태우', '노태우-전두환' 등 최근 정권을 주고 받은전.현직 대통령의 관계는 여여간, 여야간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개인적인 인연과 정치.사회적 상황 등으로 말미암아 '비정상적인' 측면을 노정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이를 답습할지 아니면 새로운 신.구 대통령 관계를 맺을지 주목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미 지난 5월 민주당을 탈당하긴 했지만 정책의 유사성과 연속성, 노 당선자 진영의 인적 구성 등으로 인해 '정권재창출'의 한 형태로 `노무현정권'을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노 당선자 스스로 `김대중 정권의 자산과 부채를 좋든 싫든 수용해야 할' 입장이라고 말해왔다. 자산은 승계가 당연하지만 "바로 잡고 뜯어 고치겠다"는 `부채'로부정부패와 인사폐해가 거론되기도 했다. 특히 노 당선자는 `낡은 정치 청산과 새 정치 실현'을 화두로 부패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책임추궁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김 대통령 주변인사들과 긴장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내 주류 교체와 동교동계로 상징되는 측근.가신.계보정치와의 단절과정에서도마찰이 빚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주변을 정리하고 가능한 한 정치와 거리를 둘 가능성이 높아 두 사람 관계는 선례와 달리 정권 인수인계 등 `업무'에선 물론 일반적인 `프로토콜'에서도 대체로 정상적인 형태를 띨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노 당선자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낸 호남 민심에 대한 김 대통령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대북.사회복지 정책과 이념 기조에서 노 당선자와 김 대통령간 일치점이 많기 때문이다. 노 당선자는 적극적인 `DJ 차별화' 주문에 대해 "야박하게 욕하고 때리고 하지않는다"고 응답해왔고 `여보 나 좀 도와줘'라는 저서에선 김 대통령에게 `지도자'라는 표현을 쓰면서 존경을 표시했다. 또 지난 91년 야권통합을 함께 하면서 김 대통령과 호흡을 맞춘 이래 자신의 주한미군 철수 입장을 김 대통령의 설득에 따라 주둔 유지로 수정하기도 했다. 그는 또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을 염두에 둔 정치행보를 할 때는 `DJ 변호사'를자임하고 나서 언론사 세무조사, 의약분업 등 야당과 국민의 반발이 가장 컸던 김대통령의 개혁정책을 적극 옹호하기도 했다. 김 대통령도 지난 2000년 해양수산장관에 노 당선자를 임명, 국정경험의 기회를제공하고, 장관 사퇴후엔 금배지도 없는 무관의 노 당선자에게 당 최고위원과 상임고문 직함을 줌으로써 대선 예비주자 반열에 올려줬다는 게 주변의 해석이다. 노 당선자는 김 대통령이 당시 확신했든 반신반의했든, 정권재창출 카드의 하나로 가능성을 열어뒀던 `호남기반 민주당의 영남후보'중 한 사람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노 당선자는 최근 사석에서 "나는 실패한 대통령이 아니라,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전제하고 "김 대통령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했다면 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다며 내가 소중히 여기는 원칙을 버릴 생각은 없다"고 김 대통령과의 차이를 설명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마키아벨리'가 아니라 자신의 핵심 원칙은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제어하며 목적을 추구하는 `승리하는김 구(金 九)'가 되겠다는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기자 kh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