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 대선은 역대 어느 대선보다 가변적으로 진행됐으나 결과적으로 지난 3월 일었던 '노풍(盧風)'의 재상승 기세만큼은 꺾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의 대선 드라마의 결말까지엔 크고 작은 숱한 승패 요인이 있겠지만,어느 승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되돌아 보면 승부 과정에선 불리한 것처럼 보였던 요인들이 결과적으로 승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될 수도 있다. 가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당내 핵심 중진들에 의해 흔들리고 동교동계의 협력을 못받아 후보지위가 위태로울 정도였지만, 그것이 나중에 한나라당측의 `노무현= DJ 양자론' 공격에 대한 예방주사가 되기도 했다. ◇노무현 당선자 승인 = 무엇보다 궁지에 몰릴 때마다 결행한 승부수가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경선을 거쳐 대선후보로 선출됐으나, 당내 분란으로 지지도가 급락한 위기에서 특히 정 대표와의 후보단일화 성사로 돌파구를 찾고, 결국은 이것이 최대의승인이 됐다. 또 일반국민 200만명이 참여했다는 국민경선 후보라는 명분은 정적이 끝까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물론 노 후보 진영의 선거전략상의 승리도 승인으로 꼽을 수 있다. `시대.세대교체론'과 `새 정치론'이란 구호가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의 표심과 맞아떨어졌다. 한나라당의 `부패정권 심판론'이 지난 6.13 지방선거때부터 사용돼 식상감을 준데 비해 `세대교체론'은 국민통합 21 정몽준(鄭夢準) 대표와의 단일화를 통한 `50대젊은 지도자론'과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세대교체론'은 한국사회의 각 분야에서 확산되고 있는 `영 파워'와 맞물려 20,30대 젊은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노풍' 확산의 진원지가 됐다. 적정수준의 `탈(脫) DJ' 전략과 유권자 감성에 호소하는 감각적인 홍보전도 승리의 바탕이 됐다. 한나라당 관계자가 "노 후보가 눈물을 흘리는 TV 광고를 보면서홍보전 완패를 직감했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대선 전날밤 정몽준 대표가 대선공조 파기를 선언, 비상이 걸렸지만, 대선 승부를 바꿀만한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 대표 입김이 강한울산과 강원을 제외하고는 득표력에 심각한 손상을 당한 흔적이 없다. 오히려 호남지역에서 90%를 훨씬 상회하는 높은 지지를 받고 젊은층에서 압도적우위를 차지함으로써 노 후보 지지층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관측이우세하다.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후보의 득표율이 여론조사상 지지도보다 저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행정수도 이전 공방이 서울.수도권의 표잠식보다는 충청권 득표력 제고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또 자민련 이인제(李仁濟) 총재권한대행이이회창 후보를 지원했지만, 김종필(金鍾泌) 총재가 강력 제동을 거는 바람에 별 효력을 발하지 못했다. 투표율이 낮을수록 노 후보가 불리할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역대 대선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음에도 노 후보가 이긴 것이 의외라는 시각도 있으나 투표율이 75%대 이하로 더 떨어지면 핵심 지지층의 결속력 등으로 인해 도리어 노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정치 분석가들은 "투표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했지만, 상대적으로 젊은층의 투표율은 낮지 않았던 것같다"고 분석했다. 노 후보로선 노사모와 돼지저금통 모금운동으로 상징되는 자발적인 후원 열기도 큰 힘이 됐다. 이와 함께 노 후보가 경남에 출생 연고를, 부산에 정치 연고를 둔 영남후보인점이 영남권의 지역주의 투표성향을 완화시킨 것도 주요 승인의 하나로 꼽힌다. 또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전, 북한 핵파문이 과거와 달리 안보위기 의식을 불러일으키지 않게 된 남북 화해협력 교류 경험, 여중생 사망 사건 파장으로 인한 반미정서 확산 등도 노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정치.사회 환경적 여건으로 볼 수 있다. ◇이회창(李會昌) 후보 패인 =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선거운동기간 내내 전략적 혼선을 빚고 선거조직의 효율적 관리와 가동에 실패한 것 등이 패인으로 지적된다. `6.13 지방선거'와 `8.8 재보선' 때와 동일한 포맷으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주 타깃으로 삼는 등 곳곳에서 허점을 노출, 내부에서 자성론이 무성했다. 국가정보원 `도청문건' 폭로 등 네거티브 전략을 택했다가 지난 5년간 폭로.비방전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의 냉담한 반응을 뒤늦게 깨닫고 서둘러 철회한 것도정치시장 소비자 입맛 변화에 대한 시장조사가 미흡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후보단일화 성사 가능성에 대한 판단 미스와 그에 따라 효율적인 사전대책준비 부족도 주요 패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시종일관 이회창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대한 응답이 이 후보 지지도의 등락에 관계없이 항상 다른 후보를 압도한 데서 드러나는 사회 저변에 깔렸던 `이회창 대세론'에 한나라당 스스로 마취돼 있었기 때문에 사전에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던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나라당은 이 후보에 대해 `7년 대통령론'이 나올 정도로 국회를 지배하는 거대 야당의 체질이 배어들면서, 야당으로서 도전적 선거전략을 택하는 대신 마치 여당처럼 수성 전략에만 급급한 측면도 있다. 기술적인 측면에선 초반 홍보전 실패에 대한 대책 요구가 무성했으나 복잡한 결제라인과 옥상옥의 선거조직 특성상 긴급 보완책을 세우는 데 실패한 점도 지적된다. 한 당직자는 "선거 회의에만 100번 이상 참석했다"고 했으나 의례적 성격의 숱한 회의로 조직의 발목만 잡았다는 자성론이 나온다. 최병렬(崔秉烈) 선대위 공동의장과 윤여준(尹汝雋) 의원을 대선도중 긴급 투입,행정수도 이전과 북핵 파문 등을 이슈화하며 반전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한 당직자는 "이 후보가 감동을 주는 정치를 하지 못했다"면서 "변화의 흐름을읽지 못한 것도 큰 패인중 하나"라고 아쉬워했다. 새 정치를 바라는 시대 흐름을 제때 파악하지 못하고 거대 야당의 대세론에 안주한 것이 패배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황정욱 맹찬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