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측면에서는 이날 KEDO의 중유지원 중단 결정은 일종의 대북 경제제재의 시작이라고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미국이 지난 99년 북한의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개발 계획을 포착한 뒤 그동안 증거확보에 주력해온 것은 `정보전'이고, `북한의 핵개발 계획 시인'이후 여러 외교경로를 통해 핵포기를 요구해온 것이 `외교전'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정부 당국자는 "그래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한.미 등의 공조를 통해 경제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본격적인 경제전으로 돌입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비교적 순조롭게 이어져온 남북간 교역도 차질이 불가피해 인도적 지원외에 경제교류 사업은 사실상 교착상태에 빠질 공산이 크다. 특히 지난 7월1일 경제개선조치 이후 강력한 대외개방정책을 시도, 올 7∼9월에만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대 중국.일본 무역액을 26.8%나 늘린 북한으로선 이만 저만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학계 관계자는 "북한은 경제개선조치 발표이후 외국자본 유치에 적극 나서는가 하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일부 도입하는 과감한 행보에 이미 나선 상태여서 돌이키기 어려울 것"이라며 "따라서 북한은 앞으로 `관망하는 가운데 미국과의 대화'를 모색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변국의 갖은 경제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오히려 이를 체제수호의 기회로 삼아 지난 90년대와 같이 `제2의 고난의 행군'에 나서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일전불사'를 외칠 수도 있다. 북한이 강경으로 맞설 경우 9.11 테러를 겪고 광범위한 대테러전을 전개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로서는 역시 힘으로 맞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북한을 `악의 축' 국가로 지목한 미국은 의회와 여론의 강경 목소리를 빌미로 최근 이라크 사태에서처럼 국가지도자 제거를 공공연히 밝히는 `정치전'에 나설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통상 정치전은 그 최종 단계인 군사전과 거의 맞물리기 때문에 이 상황까지 치달으면 한반도와 도쿄, 하와이 등을 포함해 동아태 지역 상당 부분이 전쟁의 참화에싸이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