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동맹국들은 북한을 위협적인 존재로 보고 있지만 북한지도자 김정일(金正日)이 보기에는 오히려 자신들이 위험에 빠진 것으로 느끼고 있다고 마이크 치노이 CNN기자가 22일 보도했다. 북한의 전체주의 정치체제는 스탈린 시절의 옛소련이나 중국의 마오쩌뚱(毛澤東)체제를 답습하고 있지만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는 오래전에 공산주의가 사라졌다. 많은 분석가들은 비슷한 운명을 맞을 것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려움이 세계와 마찰을 빚는 북한의 입장이나 정책을 떠받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3만7천명의 주한미군과 적대적인 미 행정부, 파국에 이른 경제로 인해 북한은 절벽으로 떠밀리는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난해 상황을 반전시킬 일부 극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중 하나는 중국에서 시장경제 개혁의 아이디어를 빌려 신의주에 자본주의식의 '행정특별구'를 설치한 것이다. 북한은 또 한국과의 대화재개와 양국을 연결하는 철도 건설을 허용,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섰다. 최근에는 그동안 부인해왔던 1970, 80년대의 일본인 납치사실을 시인함으로써 오랫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일본에도 화해신호를 보냈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일본인 납치시인은 북일간의 관계정상화의 토대마련에 도움이 됐다. 북한의 전략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국의 미사일과 핵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수십년에 걸친 미국과의 긴장관계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1994년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경유와 2기의 경수로 제공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경유 공급은 거듭 연기됐고 경수로 공사도 예정보다 수년간 지연됐다. 북한이 기대했던 북미 간의 광범위한 해빙은 결코 실현되지 않았고 북한은 협정을 위반하는 쪽은 평양측이 아니고 워싱턴측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이것이 북한이 90년대 후반 새로운, 비밀 핵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다. 이제 북한은 지난번처럼 새로운 핵 프로그램도 미국과의 협상에 이용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양국간 관계정상화 모색에 합의한다면 모든 핵개발 활동을 중단하고 협상에 임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이 적대적 정책을 포기한다면 북한은 미국과 대화해 미국의 안보우려를 덜어줄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북한에 다녀온 미국관리들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북미 협상은 대화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북한을 압박하려는 것이었다. 이점에 대해서도 북한은 자신들의 입장을 명확히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만약 미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에 압박을 가해 질식시키려는 행보를 고집한다면 DPRK는 거친 반격을 가하는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평양의 시각으로 대화나 대결이냐를 가르는 공은 이제 분명히 미국쪽 코트로 넘어간 상태다. (서울=연합뉴스) jinn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