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비밀 핵무기개발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다고 이달초 방북한 미국의 제임스 켈리 특사에게 시인함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급랭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즉각 핵사찰을 수용하지 않으면 북한과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북한이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경우 북.미 관계는 걷잡을수 없이 악화될 상황이다. 이 경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등이 진행중인 대북 경수로사업이 중단되는 것은 물론 최근들어 활발하게 추진되어 오던 남북간 교류.협력사업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후 정부가 취해온 대북 햇볕정책의 의미도 퇴색될 처지에 놓였다. 북.일 국교수립 협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북한의 개혁.개방정책 전반에 걸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 북한 왜 시인했나 북한의 핵무기개발 계획은 최근의 개혁.개방 움직임과 미국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해 왔던 것과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그동안 핵개발을 강력히 부인했던 북한의 태도와도 정면 배치된다. 이와관련, 대북 전문가들은 미국에 협상카드를 제시함으로써 보상과 체제보장을 요구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98년 북한 금창리에 핵시설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도 미국에 식량지원 카드를 내민적이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제네바합의 이후에 핵개발을 추진해 왔다면 심각한 문제"라며 "이 사실을 인정한 것은 대미 협상용으로 볼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으론 켈리 특사가 방북때 북한이 부인할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해 마지못해 핵개발 계획을 인정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수년전부터 북한의 핵개발 계획을 포착하고 추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 핵위기 재연되나 북한의 핵개발 계획 추진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지난 94년 북.미간에 체결한 제네바 합의를 파기한 것으로 볼수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은 당장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함께 전방위적인 핵사찰을 요구하는 등 대북 압박수위를 최대한 높여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이를 거부할 경우 한반도는 지난 94년 핵위기 이후 최악의 긴장상태가 재연될 위기에 놓일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켈리 특사에게 핵개발 계획 사실을 시인한후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을 나타냈고 미국도 평화적인 방법을 강조하고 있어 극단적인 대립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북.일정상회담에서 국제핵합의 준수 의지를 밝히는 등 유연한 태도를 보인바 있다. ◆ 북한 경제개혁에 차질 북한이 지난달 신의주특구 개발계획 등을 발표하며 경제개혁 의지를 밝혔을때 IMF와 아시아개발은행(ADB)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들이 북한에 대한 지원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국제기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이 자금지원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어서 경제개혁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 또한 북.미 관계 악화는 북.일 관계 개선 노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일본의 경협자금이 북한에 유입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서방자본도 더욱 투자를 꺼려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신의주 특구 개발사업의 경우 양빈 장관의 연금사태에 이어 핵 문제까지 겹쳐 실현 가능성이 더욱 희박하게 됐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의 요구대로 핵개발 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하고 대화에 나선다면 상황은 달라질수 있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은 켈리 특사 방북때 북한이 이같은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면 북한 주민 생활여건 개선을 위한 지원을 제안할 예정이었다"면서 "그러나 북한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포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태도를 바꾸면 미국도 북한에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