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양측은 4일 평양에서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방북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비롯한 미국측 대표단과 북측 대표단간의 이틀째 회담을 갖고 핵사찰,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등 현안에 대한 포괄적 협상을 벌였다. 이번 미 특사의 방북에는 내외신 기자들이 전혀 동행하지 않은데다 북한측도 회담경과에 대한 별다른 보도를 하지 않고 있어 부시 행정부 출범 후 21개월만에 재개된 북미회담 진행과 관련한 궁금증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북 `깜짝카드' 여부 = 이번 회담의 가장 관심사는 북한의 반응이다. 이미 미국은 지난해 6월 대북정책 검토를 끝낸 뒤 부시 대통령 명의로 나온 성명을 통해 핵,미사일, 재래식전력 감축 등 대북대화 의제를 분명히 제시했다. 지금까지 북한은 핵사찰 문제에 대해서는 경수로 지연건설 보상으로, 미사일 생산.수출 중단문제는 금전적 보상을 요구했고, 재래식전력 감축에는 주한미군 철수로맞받아치면서 대북적대시정책 포기 등을 요구해왔다. 이번 회담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같은 북한의 기존입장이 변화될지 여부. 최근 일련의 경제개혁 조치의 성패를 좌우할 대미관계 개선에 북한이 주력할 경우 지금까지의 입장과는 다른 전향적인 입장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주목을받아왔다. 특히 지난달 북일정상회담에서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예상밖으로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 직접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함으로써 북일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했듯이 북한이 예상치 못한 파격제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제기돼 왔다. 북한이 미국도 예상못한 수준으로 핵사찰 즉각 수용과 미사일 수출중단 등을 선(先) 천명하고 나올 경우 근본적인 대북불신감 속에 대북접근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대화주도권을 쥐면서 협상을 벌여나갈 수도 있다. ▲김정일-켈리 면담여부 = 켈리 특사가 방북기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할지 여부는 북한의 대미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나 기대수준을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관심이다. 외교관례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차관보에 불과한 켈리 특사를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이 직접 만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 출범 후 북미관계가 어느 때보다 냉각돼 있는 상태에서 어렵사리 대화가 성사됐고 켈리 특사가 부시 대통령의 특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는점에서 김 위원장이 접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대외적으로 국제사회와 미국에 대한 북한의 관계개선 의지가 상당한 수준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제스처가 된다. 미국 대표단이 북한의 전권을 쥐고 있는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 북측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향후 북미대화의 지속 등 북한의 최근 변화에 반신반의하는부시 행정부를 설득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의 관례를 봤을 때 김 위원장이 켈리 특사를 면담할 경우 4일 밤이 가장유력한 시점일 것으로 관측된다. ▲북측 협상대표 = 켈리 특사를 상대할 북측 수석대표가 누구인지도 북한이 이번 미국과의 회담을 바라보는 의미를 우회 추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다. 일단 북한은 3일의 1차회담에서 의외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전면에 내세웠다. 미국이 프리처드 대사보다 격이 높은 켈리 차관보를 특사로 보내면서 북측 수석대표도 프리처드 대사의 상대격인 김계관 부상 보다 급이 높은 강석주(姜錫柱) 외무성 제1부상이 될 것으로 관측돼 왔다. 특히 강 제1부상은 김정일 위원장의 측근으로 지난달 북일정상회담에 북측 대표로 단독배석했을 정도로 김 위원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로, 어떤 측면에서 백남순(白南淳) 외상보다 더욱 실권을 쥐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잇다. 북측이 미 대표단 방북 이틀째인 4일 열린 본회담에도 김계관 부상을 내세웠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예비접촉격인 3일의 제1차회담과 달리 4일 본회담에서는 강석주 제1부상이 전면에 나설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김 부상을 이날도 켈리 특사의 상대로 내세웠을 경우 당분간 미국과의 대화과정이 기싸움과 같은 과거식 협상패턴을 유지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황재훈기자 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