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만에 만난 그리운 얼굴이었다. 16일 금강산 여관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극적으로 납북 아들 정장백(56)씨를 만난 이명복 할머니(80.여)는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며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장백씨는 지난 68년 4월17일 강원도 고성항의 북측 경계선 부근에서 미역ㆍ해삼ㆍ멍게 등을 잠수 채취하는 속칭 `머구리배' 창영호를 타고 조업하던 중 북측 군함에 의해 납북됐다. 이할머니는 "어머니…"라고 소리치며 달려오는 아들을 부둥켜 안고 "아이고, 내새끼네…" 라며 울먹였다. 아들은 마르고 까무잡잡해졌지만 "고기잡으러 간다"며 집을 떠날 때의 모습이여전히 남아있었다. 이씨는 "다들 네가 죽었다고 했다"면서 "내가 오래 사니 널 다 만나본다"고 말했다. 남편이 일찍 죽은데다 가장 노릇을 하던 큰 아들마저 납북된 뒤 이할머니는 공공근로와 취로사업 등을 하며 어린 자식들과 힘겹게 살았다. 이할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던 아들이 너무 고생하는 것같아 배를 타게 했는데, 이틀만에 사고를 당했다" 면서 평소 "못난 어미 때문에…"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수시로 조사를 받느라 마음고생도 심했다. 두 딸은 시집을 갔지만 둘째아들 장덕씨(52)는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이할머니와야채행상을 하며 살고 있다. "와 이리 늙었어"라는 이할머니의 말에 장백씨는 "어머님 언제 보갔는가 하는생각에 더 늙었다"고 답했다. 이할머니는 "네가 살아있다고 통보받기 이틀전 아버지가 꿈속에서 보였다"면서"생전 꿈에 안보이던 양반이 아들을 보여주려고 나타나셨나 보다"라고 말했다. 북측에서 결혼한 아내 윤명숙씨(48)와 손자 남진군(18)이 큰 절을 올리자 이할머니는 "손자도 한번 못 안아보고 죽는 줄 알았다"면서 손자를 끌어안았다. 장백씨가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결혼한 맏딸이 9월5일 아들을 봐 못왔다"고 말하자, 이할머니는 "내가 오래사니까 증손주까지 본다"면서 "사진을 가져가 네 동생들에게 보여주면 좋아할 것"이라고 기뻐했다. "앓지 마시라요" 라는 며느리 명숙씨의 말에 이 할머니는 "내가 말랐어도 건강하다"고 말했다. 남쪽 동생 장덕씨와 여동생 장선(50)·장옥(47)씨의 안부를 묻는 장백씨에게 이할머니는 "다들 잘 살고 있다" 고 말했다. 납북자의 남쪽가족 상봉은 2000년 12월 2차 이산상봉에서 북측 아들 강희근씨(51)가 어머니 김삼례씨(75)를 만난 이후 세번째다. 지난해 2월 3차 상봉때는 69년 대한항공 피랍 당시 여승무원이었던 성경희씨(55)가 남측 어머니 이후덕씨(77)를 만났다. 통일부에 따르면 6.25 이후 납북자는 487명에 이른다. 야당과 납북자 가족들은 이 문제를 일반 이산가족 범주에서 분리해 별도 대책을세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납북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북측의 입장 등 역효과를 고려,이산가족 사업을 통한 조용한 해결방법을 취하고 있다. (금강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