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북한 금강산여관에서는 백발의 노부부들이 52년만에 부둥켜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조금래(72.여)씨는 6.25전쟁중 전사 처리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위패까지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온 남편 리기탁(74)씨의 생존 사실을 2000년 10월 2차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생사확인 과정에서 알게됐다. 조씨는 죽은 남편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말할 수 없이 기뻤지만 남편이 최종 상봉자 명단에서 번번이 탈락하는 바람에 남몰래 속을 태우곤 했다. 아들 태석(52)씨는 "살아계신 것을 확인하고도 만날 수 없으니 차라리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모르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들곤 했다"고 털어놨다. 다리가 불편한 조금래씨가 휠체어를 타고 금강산여관에 들어서 남편 이씨를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아들 태석씨는 "서신교환을 통해 아버지가 북에서 다시 결혼해 아들 4형제를 두고 있다고 들었다"며 아버지에게 이복 동생들의 안부를 물으면서 "하루 빨리 동생들과 조카들을 만날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중하(80.여)씨는 28세때 헤어진 남편 권오설(81)씨가 찾는다는 소식을 지난해 전해듣고 깜짝 놀랐다. 남편 권씨는 1950년 여름 아침식사를 마친후 부인 박씨와 아들 1명, 딸 3명을 남겨둔 채 바깥 소식이 궁금하다며 집밖에 나섰다가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외아들은 전쟁통에 전염병으로 숨졌다. 박씨는 상봉직전 "남편이 소식이 없어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만날 수 있다니..."라며 "현재 심정은 오히려 담담해 막상 만나면 할 말이 없을 것같다"고 말끝을 흐렸다. 박씨는 50여년동안 수절하며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별의별 고생을 다하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부부의 상봉을 부러운 듯 지켜보던 북측의 량명희(72)씨와 김흥만(79)씨는 얼굴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두사람의 아내들은 남편의 소식이 끊기자 사망한 것으로 믿고 재가해, 금강산행 설봉호에 타지 못하고 대신 친지들이 안부를 전하게 돼 주변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량명희씨의 부인 박모씨는 남편의 행방이 묘연해지고 외동딸마저 3살때 홍역을 앓던중 숨지자 `다른 인연'을 찾아 떠나버렸다. 이번 상봉장에는 박씨 대신 남동생 희주(53), 여동생 명심(66), 명금(64)씨가 어머니의 사진을 들고 찾아왔다. 남편 김흥만씨가 애타게 찾던 부인 박모(74)씨는 "재가해서 안만나겠다"며 상봉을 한사코 거절해 조카인 김재열(56), 재봉(49)씨가 대신 작은 아버지 김씨를 상봉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