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4년 사망한 허원근 일병의 자살 조작사건 당시 사건 은폐를 위해 대대급 간부까지 참여한 대책회의가 열렸고, 허일병의 피살현장을 목격한 사병들을 대상으로 '알리바이 조작' 등을 위한 특별교육까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1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허일병의 사망은 중대본부에서 술을 마신중대간부외에도 중대본부 주변과 인근 내무반에 있던 8명의 사병 등 모두 11명이 목격했고, 이후 상황을 보고받은 대대급 간부까지 사건은폐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이 일어난 4월2일 오전 2∼4시께 강원도 화천군 육군 제7사단 3연대 1대대3중대에서는 휴전선 야간경계 근무시간임에도 한 초소장의 진급을 축하하기 위해 중대본부에서 술파티가 열렸다. 당시 모 중대장이 "라면이 맛이 없다"며 모 선임하사를 질책하자, 문제의 하사관은 만취상태에서 중대본부를 나와 행패를 부리다 허일병을 향해 우발적으로 자신의 M16 소총을 발사, 허일병은 오른쪽 가슴에 총을 맞고 숨졌다. 중대급 간부들은 이후 근무지 이탈 및 술파티에 대한 문책이 우려되자 허일병이낮시간에 자살한 것으로 처리키로 했으며, 이 대책회의에는 사고 직후 보고를 받고현장에 출동한 대대급 간부들까지 참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사고 발생직후 현장에 있던 사병들에게 알리바이 조작과 증거조작 등을 위해 역할을 분담시키는 특별교육이 있었으며, 주검에 가해지는 2발의 총성을 들었을때 부대원 전원이 공포에 질려 거부할 수 없었다고 위원회 관계자는 밝혔다. 의문사위는 앞으로 허일병의 주검에 누가 두발의 총알을 쏘도록 지시했는지와사건 은폐를 위해 허일병 소속 연대와 사단급 간부까지도 개입했는지 여부 등에 대해 계속 조사할 방침이다. 허일병을 쏜 것으로 알려진 하사관은 사건발생직후 아무 징계조처도 당하지 않고 사단내 다른 중대로 전보된뒤 승진해 90년초 상사로 예편했고, 이 하사관은 위원회 조사에서 "술에 만취해 총을 잡은 것 같지만 그후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다. 한편 의문사위는 일단 허일병의 사망이 민주화운동과는 관련성이 적어 민주화보상심의위를 통해 금전적 보상 등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 국립묘지 안장과 함께 해당 군부대의 공개 사과 등을 추진키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zitro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