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님도 논산이 고향인데..." 지난 87년 1월 50t급 소형 함정 '청진호'를 타고 일가족 10명과 함께 탈북한 김만철(金萬鐵.62)씨는 19일 순종식(70)씨 등 세 가족 21명이 서해상을 통해 탈북했다는 소식을 듣고 감회에 빠졌다. 특히 순씨 고향이 충남 논산이라는 말을 듣고는 이미 작고한 지 오래인 부친 김정규씨 고향 역시 논산이라며 "묘한 일"이라고 말했다. 순씨 일가족 등 세 가족이 평북 신의주시 근처 선천군을 떠나 20t급 목선을 타고 서해안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면 김씨 일가족 11명은 87년 1월15일 새벽 1시께 함북 청진시를 떠나 50t급 소형 함정을 타고 왔다. "당시에는 경계가 완전히 삼엄했죠. 민간인은 바다에 함부로 못 나갑니다. 바다출입증이 있어야죠. 당시에 제가 해안경계 부대 군의관이었기 때문에 소형 전투함을훔쳐 탈 수 있었죠. 전투함은 밤이나 낮이나 다닐 수 있으니까..." 김만철씨 일가족이 꿈에 그린 '따뜻한 남쪽 나라'는 인도네시아였다. "남한에는 맨 거지 떼만 있는 줄 알았죠. 인도네시아 어디 무인도에 가서 살려고 했는데 부산과 일본 사이 해협에서 태풍을 만나는 바람에 배가 엔진 고장을 일으켜서 일본 후쿠이(福井)현 쓰루가(敦賀)항으로 휩쓸려갔었죠" 김씨 일가족이 한국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한 달여 지난 87년 2월8일이었다. 당시 11명이던 일가족은 현재 25명으로 불어났고 만 46세로 한창이던 김씨는 지난해 회갑을 지냈다. 김씨는 한 때 의사 출신임을 인정받아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다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속아 전 재산을 투자했다가 날리기도 했다.그 뒤 순회 강연으로 마음을 달래며 신앙생활에 몰두, 남해에 기도원을 세우기도 했다. 큰아들 광규(37.한국토지공사 근무)씨는 아이가 3명이고 막내딸 광숙(28)씨는지난 2000년 같은 탈북자 출신인 한용수(26)씨와 결혼해 화제가 됐다. 큰 딸 광옥씨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고 귀순 당시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던 막내 광호(26)씨는 지난 2월 미국 남가주대(UCLA)를 졸업했다. "남쪽에는 거지 떼는 별로 없는데 사기꾼이 많더군요" 현재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에서 살고 있는 김씨는 19일 아침 TV 뉴스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는 한 식구니까 쉬웠지만 세 가족이라니 어려운 일이 많았을 겁니다. 저도 탈출하려고 10년 이상 치밀하게 준비했는데 그쪽도 간단한 일은 아니었을겁니다. 죽을 각오로 왔을 겁니다. 그 각오로 여기서도 열심히 살아야죠" (서울=연합뉴스) 이충원기자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