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한국근현대사교과서 검정위원 10명이 일괄사퇴, 교과서 논란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우선 철저히 비공개 원칙이 유지됐던 검정위원들의 명단이 공개됨으로써 검정위원들의 사퇴사태까지 빚어져 이들로부터 검정을 받아 통과한 교과서 4종과 탈락해 재검정을 기다리고 있는 교과서 4종에 대한 검정기준 형평성 시비는 불가피하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재검정에 참여할 검정위원 위촉에 심각한 어려움이 예상돼 재검정 일정이 지연될 수 밖에 없어 내년 3월까지 고교에 교과서가 제때 공급될 수있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검정위원들이 사퇴하면서 지적한대로 검정위원수와 검정기간상의 제한으로 방대한 양의 교과서를 면밀히 검토할 수 없는 현행 검정제도에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정부가 만드는 국정교과서가 아닌 민간이 만드는 검정교과서의 기술내용에 대한 지나친 문제제기는 검인정제도의 근간인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검인정제도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야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교과서 제작일정 차질없나 = 검정을 맡았던 위원들이 일괄 사퇴함에 따라 당장 재검정 위원 위촉부터 어렵게됐다. 사실 근현대사과목은 처음으로 검정과목으로 전환돼 이렇다 할 전문가가 없는데다 앞으로 얼마든지 빚어질 수 있는 유사한 논란과 오해를 감수하고라도 검정위원을 맡겠다고 나설 인사가 얼마나 있을지 미지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예정했던 재검정 일정은 오는 22일 교과서 1차 심사결과발표→9월18일 교과서 2차심사결과 발표→11월1일 교과서에 대한 교사용지도서 1차심사결과 발표→교사용 지도서 2차심사결과 발표→12월12일 최종합격자 발표 순. 이는 근현대사교과서 뿐만 아니라 지난 2일까지 재검정에서 탈락해 재검정신청서를 접수한 중.고교용 교과서 35개 과목 87권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일정이다. 근현대사교과서의 경우 재검정위원조차 제때 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12월12일 최종합격자 발표이후 1억권이 넘는 교과서를 일괄 인쇄하는 일정에 맞추지 못할 수도 있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근현대사과목은 교과서만 만들고 교사용 지도서는 만들지않는 과목인 만큼 검정위원 선정이 어느정도 늦어지더라도 일정상 큰 무리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장담하기는 어렵다. 교과서는 해마다 빠듯한 일정으로 각급학교에 뿌려져 학기가 시작돼도 학생들이 한동안 교과서도 없이 공부하는 등의 잡음이 계속돼왔다. ◇검정제도 개선돼야 = 근현대사 검정위원들이 사퇴하면서 지적한대로 현 검정제도하에서는 검정에 참여하는 인원과 시간이 전체 작업량에 비해 너무 방대해 철저한 검정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근현대사 검정위원들은 지난해 12월 검정위원으로 위촉된 후 올해 1월11∼17일7일간 1차검정, 2월20∼22일 3일간 2차검정을 실시했고 마지막으로 하루동안 최종 3차검정을 실시했다. 모두 11일에 불과한 것으로 9개교과서가 제출한 300∼400페이지짜리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히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검정위원들은 "현정권에 대한 서술부분을 면밀히 검토하지 못한 것도 사실은 이런 사정과 관련있다"고 털어놨다. 과목에 따라 2차검정까지 거치는 경우 실제 검정기간이 5∼6일 정도인 경우도 있어 검정인력과 기간 보강문제는 사실 전 검정교과목에 해당된다. 이와 함께 정부주도의 국정교과서 체제에서 검인정 교과서가 확대되는 추세에 맞춰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는 검정위원의 공정성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검정위원 위촉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해야한다. ◇검인정 교과서 자율성은 어디까지 = 국정 일색이던 교과서를 민간이 펴내는 검인정교과서로 전환하는 것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현재까지는 국어, 국사, 도덕과목의 교과서가 국정으로 남아있으나 국사과목중한국근현대사가 처음으로 검정교과서로 내년에 전환되는데 이어 앞으로는 국어, 도덕과목도 검.인정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방침으로 지난달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개정안 발표를 통해 이 원칙이 시행되고 있다. 심지어는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개정에 따라 음반이나 영상물, 전자저작물 등을 활용한 전자교과서까지 검.인정교과서로 도입할 수 있게됐다. 이에따라 검정교과서에 대해서 교육부가 시달하고 있는 `교과서 공통기준(헌법정신 일치 등의 기준)'이나 '교과기준(교육과정 준수 기준)'마저도 지나치게 구체적이어서 검인정제도의 집필과 검정의 자율성을 제약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각 학교에서 검정교과서를 채택할때 교과목 협의회와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쳐 자율적으로 결정하므로 수요자인 학교에서 내용을 판단해 선택토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근현대사 검정위원으로 참여했던 충남대 박찬승 교수는 "검인정제도의 기본취지에 따라 가급적 집필자들의 서술을 존중하고 수정.보완요구는 최소화해야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검인정 과정에서 제출된 모든 교과서의 내용을 똑같이 서술할것을 요구한다면 국정교과서와 다를게 무엇이냐"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번 근현대사 교과서의 전.현정부 기술 시비는 우리 사회 구성원사이에서는 아직까지 검인정교과서의 자율성 보장에 대한 최소한의 원칙적인 공감대조차 형성되지 못한 실상을 보여줘 과연 교과서의 자율성은 어디까지 보장돼야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야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chae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