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후보는 26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전경련.중기협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재계를 향해 자신들의 경제관과 경제정책을 제시하는 '면접시험'을 봤다. 특히 이 후보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경제정책과의 차별화에, 노 후보는 이후보와의 차별화에 중점을 둠으로써 두 사람의 대선전략을 그대로 보여줬다. 두 사람은 이날 세미나 참석 후엔 각각 북제주 재선에 출마한 자당 후보들에 대한 지원유세를 벌이는 등 제주 대결을 벌였다. ◇이회창 후보 = '일류경제를 향한 새로운 리더십의 역할'이라는 강연과 일문일답을 통해 정경유착 등 관치경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루고 자율에 뿌리를 둔 자유시장경제의 틀을 새로 구축하겠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를 위해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하고, 경제의 기본질서에서부터 기업과 산업 경쟁력, 과학기술과 인재양성, 금융산업, 노사관계, 공기업, 사회복지 분야를 과감히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정치자금을 내지 않아도,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기업할 수 있는 편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칠줄 모르는 혁신만이 우리 경제가 살 길이며 새 리더십은 관치경제에 토대를 둔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교훈을 구하되 일류경제를 향한 혁신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 리더십"이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현 정부 초기의 `빅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난 4년반 동안 관치경제의 병이 더 깊어졌는데, 그 단적인 예가 바로 빅딜정책"이라는 것. 또 그는 "수십년간 체질화된 관치경제를 혁신하는 데 수반될 기득권층의 엄청난 저항을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한 새 리더십에 대해 이 후보는 "새 리더십은 무엇보다 법과 원칙의 바탕위에서 '제왕적 인치(人治)'가 아니라 '법과 원칙'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과 경제상태를 '인치로 인한 관치경제'로 규정하고 '법치에 의한 자유시장경제'를 대비시킨 것이다. 이 후보는 또 "김 대통령이 99년부터 남북관계와 국내정치에 매달리느라 경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며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경제살리기에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두겠다"고 말하고 "새 정부 구성에는 지역안배나 논공행상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등 김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극복'을 부각시켰다. 그는 또 아르헨티나를 예로 들며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하는 경제엔 희망이 없다"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투자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성장 잠재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와 함께 이 후보는 정부와 공공부문의 효율성 재점검을 촉구하고 규제개혁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공정거래위와 국세청, 금감원 등 국가기관들이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본연의 역할을 다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밝혀 집권시 이들 3대기관에 대한 조치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날 이 후보 강연 논지는 "일류 경제를 위해선 일류정부가 필요하다"는 말로 압축된다. ◇노무현 후보 =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새로운 리더십'이라는 제목의 강연과 일문일답을 통해 자신의 경제관에 대한 기업인 특히 대기업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하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성장모델을 제시했다. 특히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와 1시간 간격으로 강연 경쟁을 벌이는 상황도 염두에 둔듯, 차별화에도 신경썼다. 먼저 노 후보는 스스로 한국경제 업그레이드를 위한 새로운 성장모델로 정의한 `지속가능한 성장'의 개념에 대해 "투명한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부와 기회가 창출되고 그 수혜를 모든 경제주체들이 균형되게 누리는 경제"로 설명했다. 이어 ▲시장기능이 온전하게 작동하는 효율적 시장의 구축 ▲모두 함께 하는 건강한 성장의 구현 ▲동북아 중심국으로의 도약 등 세가지 핵심전략을 제시했다. 효율적 시장 구축과 관련, 노 후보는 "기업에 대한 규제는 획기적으로 폐지하는 방향으로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며 관치의 잔재로 남은 규제나 준조세 등의 과감한 폐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대기업의 무리한 외형 확장과 선단식 경영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출자총액제한 제도에 대해 "재계에선 불편하게 여기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저는 당분간이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균형있는 규제철폐' 원칙을 내세웠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저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크기를 문제로 보지않는다"며 "기업의 크기에 따라 경영을 제한하는 규제들은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도 보이려 했다. 이어 `건강한 성장'에 대해 노 후보는 "분배가 성장을 자극하고 다시 성장이 분배의 몫을 키우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제가 생각하는 성장과 분배의 관계"라고 종전 자신에게 덧씌워진 분배우선의 이미지를 불식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다른 대통령 후보보다 분배문제를 강조하며, 이는 더 악화되기전에 빈부격차 개선과 저소득층 삶의 질 확보에 좀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라고 이회창 후보와의 차별화도 시도했다. 특히 지역균형개발 문제에 대해 노 후보는 "지역문제도 균형이란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국민통합만으로도 우리경제의 잠재 성장률을 1-2% 포인트 높일 수 있다"고 `지역구도 타파'의 기수임을 자임했다. 동북아중심국 도약문제를 언급하면서 노 후보는 "동북아시대를 주도하려면 남북간의 화해협력은 기본적인 명제"라며 "우리는 북한을 동아시아의 일원으로 포함시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하며 나아가 남북한 경제통합의 환경을 조성하고 통일의 기초를 다져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후보를 의식한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제주=연합뉴스) 고형규 민영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