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당 머신(party machine)은 선거조직의 전형적인 예로 꼽힌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의 정당 머신들은 대도시 선거와 정치를 장악한 암적 존재였다. 머신이라는 말이 처음 쓰여진 것은 1800년 대통령 선거에서 파란을 불러일으켰던 당시 뉴욕주 주지사 아론 버에 의해서였다. 이때만 해도 정당 머신은 특정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지지자들이 모인 유권자 조직을 의미했다. 머신들은 남북전쟁 이후 대도시를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에 이르러서는 주요 대도시들의 선거와 정치가 머신에 의해 장악됐다. 뉴욕의 '태마니 홀'이나 필라델피아 공화당 머신, 시카고 민주당 머신 등은 대도시 정치와 연방 정치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악명 높은 정치조직이었다. 미국의 머신이 움직이는 전형적인 방식은 보스의 지시에 따라 표와 돈이 동원되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가 나눠지는 식이다. 우선 머신은 보스 1인의 지배 하에 보스의 지시대로 움직인다. 보스 자신 혹은 보스가 지명하는 후보자를 당선시키기 위한 선거조직인 것이다. 예컨대 1960년대 시카고 민주당 머신의 보스였던 리처드 데일리는 시카고 시장에 불과했지만 일리노이 주지사나 연방상원의원을 마음대로 갈아치우며 조종했다. 심지어 68년 대선후보 지명대회에서는 보스들간의 밀실야합을 주도해 일반 당원들의 의사에 반하는 험프리를 지명하기에 이르렀다. 그 반작용으로 공화당의 닉슨에게 참패했다. 둘째 머신은 보스가 지명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와 돈을 동원한다. 여기에는 선전, 설득, 회유, 악선전, 협박과 같은 방법도 사용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매표와 불법 자금의 조성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후 머신은 전리품을 분배한다. 조직원들에게 물질적 혜택은 물론 다양한 공직들이 분배되고, 돈을 대 준 기업가들에게는 관급공사와 같은 막대한 이권들이 돌아간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질이 떨어지고 정경유착의 비리가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구당 조직은 여러 면에서 반세기전 미국의 정당 머신들을 닮았다. 그만큼 시대에 뒤처져 있고 수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우리나라 지구당 조직은 특정 정당의 지지자들이 참여하는 대중정당조직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직 후보자의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를 동원하는 사적 조직이다. 더욱이 선거전이 벌어지면 각종 친목모임이나 연고모임들이 표를 동원하는 준(準)선거조직이 된다. 이런 조직들을 가동하려면 막대한 정치자금이 소요되고 이 자금은 정상적인 통로와 합법적인 방법에 의해 조성될 수 없다. 우리 정치는 반세기전 미국보다 더 다양하고 부패한 머신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셈이다. [ 대표집필=백창재 서울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