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가 제안한 '청산프로그램'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당초 청산 문제가 8.8 재보선에 대비한 민심회복용으로 제시된 것이어서 내달초 후보 공천과 거의 동시에 가시적 조치가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민감한 사안인 김홍일(金弘一) 의원 탈당 문제도 당내 이견이 있지만 큰흐름에서 볼때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고, 부패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안 마련도 곧 구체화된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김홍일 탈당 = 김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한화갑(韓和甲) 대표가 직접 물밑 조율을 맡아 자진탈당을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측은 26일에도 "탈당은 안한다"며 외견상 완강한 태도를 보였지만 당의한 핵심관계자는 "대세가 그렇게 가고 있는데 이를 거스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문제는 모양새다. 김 의원은 지난주 탈당 문제에 대해 상당부분 결심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신기남(辛基南) 최고위원 등 쇄신파들이 24일 공개적으로 탈당 문제를 거론하자 다시 입장을 원점으로 후퇴시켰다는 후문이다. 떼밀리는 식으로 나갈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대표와 고위 당직자들도 쇄신파들의 공개촉구를 `성급한 행동', `일을 망치려는 것이냐'며 불쾌해 했다고 한다. 한 대표는 "차별화는 윈-윈(Win-Win) 방식으로 해야 한다"며 적절한 분위기를조성해 본인이 스스로 결심하도록 하되 그 역할을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입장이다. 노 후보는 직접 탈당 문제 등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당내에서 처리돼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며 탈당 문제의 조속한 정리를 기대하는 눈치다. 한 고위 당직자는 "2-3일만 기다려 보라"고 말해 조만간 김 의원측의 입장 표명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지만 또 다른 당직자는 "월드컵 폐막 직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태재단, DJ와 절연 = 쇄신파들은 김 의원 탈당외에도 아태재단 해체, 청와대 비서진 문책, 김방림 의원 등의 검찰출두, 후보와 지도부의 `탈DJ 선언'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노 후보가 직접 `DJ와의 절연'을 선언하는 방안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6.29 선언식' 절연 방식을 건의하고 있다. 노 후보측도 "수술이 필요한 사안이라면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며 일정부분 긍정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내에서 아태재단 해체나 인적 청산 등에 대해 "공익법인인데 어떻게해산을 시키나" "청와대가 결단할 일인데 당에서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등의이유로 공개적 거론을 껄끄러워 하는 측도 많다. 필요는 하지만 결정은 청와대가 할 일이라며 은근히 김 대통령의 결단을 기다리는 분위기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내치(內治) 중단' `거국중립내각 구성' `책임총리제 도입' 등 국정쇄신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이 국가적 위기상황이냐"(김태랑 최고위원) "쇄신파의 건의에 그런 것은 포함되지 않았다"(신기남 최고위원), "부패권력 문제가 아니라 부패 친인척 문제로 봐야 한다"(이재정 의원)며 쇄신파들조차 반대하는 입장이다. ◇ 노-한 역할분담 = 노 후보는 미래의 제도개선 방안 마련을, 한 대표는 과거청산쪽을 맡는 일종의 역할분담이 이뤄지고 있다. 김홍일 의원 탈당, 아태재단 해체, 인적청산 등 과거청산 문제는 상당부분 한대표가 물밑에서 당 소속의원 및 청와대측과 조율을 벌여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후보는 26일에도 시민단체 대표들과 `부패청산 간담회'를 갖는 등 청산 분위기 조성을 위한 정책투어를 계속했다. 서울 YMCA 본부에서 열린 간담회에는 이남주 YMCA 사무총장, 박인환 투명사회운동본부 대표, 김선수 민변 사무총장, 참여연대, 여성단체연합 간부 등이 참석했고,당측에서는 신기남, 정세균, 천정배 이미경, 함승희 의원 등이 참석했다. 노 후보 비서실에서는 ▲대통령 친인척 관리법 제정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신설 ▲정치자금법 개정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특검제의 한시적 상설화, 인사청문회 대상 확대 등 한나라당의 요구도검토 대상에 포함시켰다. 다만 후보측에서 검토한 사안도 당론 채택과정을 거쳐 한대표가 발표하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노 후보가 청산 프로그램을 처음 제안하면서 "구체적 방법론은 당의 공론화를통해 해나갈 것"이라고 말한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에서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