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중인 독일의 노벨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75)는 29일 남북 통일은 상호 존중의 분위기에서 추진돼야 하며 상대적으로 어려운 북한을 인도주의 차원에서 무조건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라스는 이날 기자회견과 중앙대 심포지엄(29-30일)에서 독일 통일이 노정한 문제점을 근거로 한반도 통일 방식에 대한 조언을 건네며 북한을 '깡패 국가'로 부른 조지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태도는 통일에 악영향을 끼칠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독일의 경험을 예로 들며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남한사람들이 세금을 더 부담해 아무 전제조건없이 북한을 도와주는 휴머니즘적 입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뒤 "남한은 역사의 승리자로서 북한에 마음의 상처를 주면 안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 비판에 앞서 독일인들에게 통일 가능성을 열어준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의 경우를 언급해 이들이 미친 긍정적ㆍ부정적 영향을 대조하기도 했다. 그라스는 자신의 통일관을 밝힌 기자회견에 이어 중앙대 한ㆍ독문화연구소 주최 심포지엄 '통일과 문화'에서 발제문 '독일 통일에 관한 성찰'을 통해 통독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나름대로의 한반도 통일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는 서독인에게는 동독인에 대한 존경심이 없었고 동독인을 '늘 징징거리는' 가난한 친척쯤으로 여겨 오늘까지도 동독인은 자신을 독일의 이등 시민으로 비하하는 부작용이 초래됐다면서 부유한 남한이 가난한 북한에게 승자의 입장을 취한다면 독일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통독과정에서 서독 통화를 성급하게 도입해 많은 것을 파괴했다"면서 독일은 단숨에 통일하지 않고 연합체제라는 과도기를 거쳐야 했다고 지적했다. 한반도의 경우 "일단 연합체제 안에서 남한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한다면 완전히 하나로 통일될 때 북한인이 남한인과 어느 정도 대등한 파트너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라스는 통독 이후 서독에서 동독의 예술을 어용예술로 쓰레기장에 던지려고 시도했으나 작가들의 노력으로 관철되지 않은 사례를 들면서 "남북 작가들은 비판을 하더라도 상대 예술을 존중하고 제대로 평가하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포지엄이 열린 중앙대 아트센터 대극장에는 미처 입장하지 못한 학생들이 행사장 밖에서 비디오로 강연 장면을 지켜보는 등 노벨상 수상작가로서 한반도 분단과 통일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그라스의 발언에 주목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성섭 기자 le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