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문사 1호'로 여겨지던 최종길 전 서울법대 교수의 죽음이 민주화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발생한 '의문사'로 결정난 것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당시 핵심 권력기관의 부도덕성을 국가기관이 처음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진상규명위에 따르면 최 교수 사건이 발생한 지난 1973년은 박정희 정권이 장기독재를 위해 제정한 유신헌법에 대한 반발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돼 유신체제의 정당성이 부정되고 권위주의 통치가 약화되던 시기였다. 체제수호를 담당하던 당시 중앙정보부는 `김대중 납치사건'과 반정부 인사들을내란혐의로 체포하는 `강수'와 함께 간첩사건 발표등을 통해 국민에게 안보위기의식을 조성, 반체제를 누르고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하고자 했으며 이런 흐름속에서최 교수의 죽음이 발생했다는 것이 진상규명위의 판단이다. 정권안보를 위해 당시 서울법대 교수로 사회적 영향력이 컸던 최 교수를 `공작대상'으로 삼으려 중정에 소환했다가 최 교수가 각본대로 따라주지 않자 고문 등 가혹행위를 가하고 이것이 직.간접적 원인으로 작용해 최 교수의 죽음을 불러왔다는것이다. 중정이 정권안보를 위해 한 개인을 죽음으로 몰고갔고 이를 은폐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권력을 틀어쥐었던 중정이나 옛 안기부가여타 의문사 사건에도 어떤 식으로든 관련됐을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로 최 교수 사건과 더불어 주요 의문사로 꼽히는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와 대학생 이내창, 이철규씨 의문사 그리고 노동운동가 박창수씨의 의문사 등에는 모두 중정이나 안기부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큰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중정이나 안기부가 각종 의문사에 개입됐다는 의혹을 갖고 있으면서도 민간신분이어서 진실을 밝혀내는데 한계를 겪었던 유가족이나 민주화단체들의 진실규명 요구는 이번 최 교수 사건의 의문사 인정을 계기로 한층 거세질 것으로보인다. 이와 함께 민주화운동 관련성에 대한 진상규명위측 해석의 포괄성과 적극성도최 교수 의문사 인정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당초 최 교수 사건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성'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음에도 진상규명위는 이번 결정에서 "최 교수의 간첩자백 거부라는 소극적인 항거 또한`권위주의적 통치 또는 군사독재에 항거한 활동'"으로 해석함으로써 결정을 앞둔 다른 진정사건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진상규명위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최 교수 사건의 의문사 인정은 진상규명위를 비롯, 사법당국에 `공소시효 문제'라는 또 하나의 과제를 안겼다. 진상규명위는 최 교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으로 인정된 수사관들이나 중정 직원들의 경우 현행법상 공소시효가 완성돼 고발 및 수사의뢰를 하지 않기로 하고 반인권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적용배제의 필요성을 담은 권고안만 낼 방침이다. 최 교수의 아들인 최광준(38) 경희대 교수는 공소시효 문제때문에 아버지의 죽음에 관련된 이들에 대해 형사소송을 포기한 채 국가를 상대로 유가족이 겪었던 정신적.육체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만 낼 예정이어서 반인권적 범죄에 대한공소시효 적용배제가 다시 공론화될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기자 sout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