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대사.金夏中)의 총영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는 김정일 등을 호위하는 호위총국 산하 평양시 삼석구역 부대에 근무한 인민군 장교 출신 S씨(36)로, 총영사관내에서 3차례에 걸쳐 망명을 요청했으나 영사와 직원이 모두 묵살했다고 23일 말했다. S씨는 또 96년 10월에는 산둥성(山東省) 칭다오(靑島)총영사관내에도 진입해 한국행 망명을 요청했으나 한국 외교관들이 묵살했으며, 97년 10-11월에 한국대사관관리를 베이징(北京)시내에서 여러차례 만나 한국행 망명 의사를 밝혔으나 역시 무성의하게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참다 못 한 S씨는 98년 9월 중국 남부로 내려가 홍콩을 거쳐 한국으로 망명하려고 홍콩과 맞닿은 광둥성(廣東省) 선전(深천)경제특구의 높은 철책을 밤 12시에 기어올랐으나 30여명의 중국 국경 경비병들이 몰려와 호수로 뛰어든 뒤 야산의나무위로 숨어들어 하룻밤을 지새우며 이들을 간신히 따돌렸다고 말했다. 그후 S씨는 베이징으로 올라와 현재 아주 좁은 곳에 기거하며 틈만 나면 한국으로 망명할 계획을 세우다가 지난 17일 망명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그는 23일 연합뉴스 베이징특파원과 4시간에 걸쳐 만나 이같이 말했다. 중국을 거쳐 한ㅁ국으로 먼저 망명한 S씨의 학교 동창 Y씨와 P씨는 S씨와 초등학교, 고등학교 시절부터 직장생활때까지 함께 학교를 다니고 생활하는 등 절친한사이라고 밝히고, 그가 한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중국에서 여러 차례 호소해왔다고 말했다. 탈북자 담당 한국 정부 관리도 S씨에 대한 신분 확인 작업을 거쳐탈북자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S씨는 탈북후 97년 7월 산둥성 옌타이(煙臺)에서 처음 체포된 뒤, 98년 9월 광둥성 광저우(廣州)에서, 올해 4월 베이징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돼 수갑이 채워진 채끌려가 억류됐으나 이때마다 탈북자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겨 풀려나왔다고 밝혔다. 그가 풀려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뇌물을 주고 산 ▲주민신분증 ▲북경시임시거주증과 그의 처지를 어렵게 생각한 한 기업이 그에게 만들어준 ▲공작증(직장신분증)을 언제나 들고다녔기때문이었다. 뇌물로 사용한 돈은 한국에 미리 망명한 그의 북한 고등학교 친구 Y씨가 몰래 보내준 것이었다. S씨가 지난 17일 총영사관내에서 3번이나 망명을 요청했다는 말은 대사관과 총영사관 관리들이 "17일 북한인이라고 진입한 사람이 망명 의도를 밝혔다면 우리가구체적인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정반대여서 철저한 진상 조사가 요구되고 있다. 조사후 현지 대사관이나 총영사관 외교관들의 보고 누락이나 부실, 늑장 또는 허위 보고가 있었다면 신상필벌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S씨는 총영사관내에서 차례로 시간 간격을 두고 "북한에서 왔는데 망명 신청을하러왔다. 영사를 만나겠다", "면담신청서를 쓰라는데 무슨 면담신청서냐. 망명 신청하러 왔다", "나는 망명하러 왔는데 여기서 못 나간다. 나를 가라는 것은 죽어라는 것과 같다"고 영사와 영사관 직원에게 총 3차례에 걸쳐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영사와 영사관 직원이 줄곧 허둥댔으며 그의 말을 일체 들으려 하지 않았고 손을 끌어당기며 반강제적으로 끌어냈다고 말했다. S씨는 20일 오후 3시께 총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이름을 정식으로 밝히며 "망명을 신청하러 온 사람을 돌려보내느냐"고 항의했고 담당 영사는 자신이 자리에 없어 그랬다고 주장하며 들어오라고했으나 경비가 강화돼 체포될까봐 총영사관 재진입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S씨는 96년 9월8일 오후 3시 함경북도 종성군에서 군대 시절 단련한 강한 체력과 수영 솜씨로 두만강중 물이 깊은 지역을 수영으로 건너 중국의 지린성(吉林省)카이산툰(開山屯)에 첫 발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넘어온 친구는 97년 5월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에서 체포돼 북송됐다. S씨는 92년까지 호위총국 산하 평양시 삼석구역 부대에 근무하면서 '남자는 배여자는 항구' 등 많은 한국 노래를 불러 "반동적이고 반혁명적인 노래를 했다"고 비판받고 제대후 93년부터 함경북도의 전기공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당비서의 친척처녀와 결혼하지 않자 압력이 가해진데다 북한에서도 제일 가난한 함경북도의 극심한 경제난을 피하기 위해 망명할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그는 신분 노출을 우려하며 얼굴 정면이 잘 안보이게 옆모습을 카메라로 찍어달라고 여러차례 요청했다. (베이징=연합뉴스)이상민특파원 smlee@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