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반지 우리 아내 줘야지" "안돼요. 당신이끼어야 해요" 기자출신으로 지난 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대표자 연석회의에 김구 선생 등과함께 청년대표로 참석했던 북측 김강현(76)씨와 50여년간 수절해 온 남측 아내 안정순(74) 할머니는 2일 동생 김영순(68)씨가 건네준 다섯 돈짜리 금반지를 놓고 사랑싸움을 벌였다. 수절부인 안 할머니가 "정말 보고 싶었어요. 한번이라도 만나려고 기도 많이 했다"며 남편을 향한 애틋한 심정을 전하자 김씨는 "우리는 아직 애인 같잖아"하며 떨리는 손으로 안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결혼한지 5년, 두살 연상인 남편이 25살 되던 해 어느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간 뒤 소식이 끊어졌다 52년만에 만났다. 안씨는 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남편에게 손을 맡긴채 조용한 목소리로 응대했다. 안 할머니는 눈물을 머금은 채 "살아줘서 고마워요. 정말 보고 싶었어요"라는말에 50년 세월의 그리움을 가득 담았다. 그러나 안 할머니의 그리움은 사실 50여년 세월 탓만이 아니다. 생이별 이전부터 남편 김씨는 '큰일'에 매달려 살아온 탓에 언제나 연민의 대상이었다. 지난해 이미 서신을 통해 남편 김씨가 북측에서 재혼해 딸 넷을 낳았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도 그리움은 그대로 사무쳤다. 당시 혜화동에 있었던 경제전문학교를 졸업한 남편 김씨의 공식직업은 기자였다.여운형 선생이 만든 중외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하던 김씨는 신문논조가 진보적이라는이유로 네 차례나 옥고를 치렀고 안 할머니는 제대로 된 신혼생활 대신 옥바라지에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김씨는 북으로 간 뒤에도 곧바로 내각 직속 중앙지도 간부학교에서 근무하다 황북일보사에서 기자생활을 이어갔다. 조국통일상과 훈장도 받고 북한 지도층 인사로활동했다. 북측 안내원들은 남측 기자들에게 "김씨를 취재해 보는 것이 어떠냐"며 강력 추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를 만난 아들 재성(55)씨는 아직 제대로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재성씨는 "어린 나이에 헤어져 기억을 못하는 상태에서 힘겹게 세상을살아왔다"며 "아버지를 만난 것은 고맙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50년만에 금강산여관 5층의 한 방에서 아버지를 만나 세월의 벽을 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아 보였다. (금강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