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내세우는 거시경제정책의 키워드는 '원칙'과 '분배'다. 경제정책에는 경제논리가 앞서야하며 정치논리에 왜곡되고 좌절돼선 안된다는 것이다. 또 대기업을 비롯한 특권계층에 의해 시장이 독점되거나 경쟁원리가 훼손돼서도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노 후보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주의자다. 그러나 '시장 자체가 자유경쟁을 하기에는 불완전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자연적으로 독점이 이뤄지는 산업(국가기간망산업)과 공공재와 같이 시장실패가 생길 경우 분배정책 등을 통해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자유경쟁과 사회연대가 병행돼야=노 후보는 자유경쟁과 시장원리의 최대 적으로 대기업을 꼽고 있다. "재벌의 횡포와 불공정 관행을 막아야만 공정한 시장의 룰이 확립되고 경제도 활발하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한시적 출자총액제한과 같은 정책을 주장하는 것도 이같은 철학에서 비롯된다. 노 후보는 시장경제의 냉엄한 현실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복지와 분배'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시장은 냉혹하고 빈부격차와 낙오하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 만큼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 후보의 참모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적절한 소득분배를 통한 국민통합(지역·사회 통합)은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2∼3%포인트 더 높이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노 후보는 '일자리 창출'을 경제정책의 제1의 과제로 꼽고 있다. 노 후보의 조세정책도 빈부격차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노 후보가 "투자의 활성화보다 일부 특권층을 위한 정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며 법인세 소득세 인하에 반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 후보는 이같은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부동산투기억제책 마련을 주장하고 고리사채를 40%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 후보는 또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다수의 중소농에게는 소득을 지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농민우대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2005년부터 쌀을 비롯한 농업시장의 전면개방을 앞두고 있는 점을 감안할 경우 다각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모든 기업규제는 철폐돼야=노 후보가 말하는 '공정한 시장경제주의'와 재벌개혁 가속화,분배와 복지중시 정책은 필연적으로 '관치경제'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노 후보진영의 배기찬 정책팀장은 이같은 우려에 대해 "정부가 경기장에 뛰어들어선 안되지만 운동장에 웅덩이가 없는지,골대가 올바른 위치에 서 있는지 돌보는 일은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야당으로부터 '포퓰리즘적','사회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김대중 정부의 정책보다 더 짙은 진보적 색채를 띨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노 후보는 그러나 재벌규제와 기업규제는 철저히 구분하고 있다. "환경,안전,건강에 관한 규제를 제외한 모든 기업규제는 철폐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공무원들의 철밥통 역할을 해온 '관료적 규제'는 최대한 없애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