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에 만난 이부자(62), 신호(66)씨 자매 앞에 영정으로 나타난 어병순(93)씨의 모습은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인자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부자씨가 29일 오전 10시 20분께 금강산여관 716호에 들어서자 조카 최청섭(31)씨는 "편히 잘 쉬었나. 식사는 어떻게 했냐"며 인사를 건넸고 신호씨도 "방을 쉽게 찾았느냐"며 동생의 안부를 물었다. 신호씨가 어머님을 위해 북측이 마련해준 옷감을 전달하자 부자씨는 "어머니가 입어보셨으면 좋았을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부자씨가 어머니의 영정을 내보이자 신호씨는 "내가 먼저 봐야지"라며 울먹였고 이내 어머니 영정을 껴안으며 흐느꼈다. 부자씨는 엄마 모습을 알아보겠느냐며 묻자 신호씨는 "그래 엄마 모습이 맞다. 어머니를 모시느라 네가 고생이 많았다"고 위로했다. "영정이나마 어머니 한번 불러봐"라는 부자씨의 말에 신호씨는 과일 몇개와 음료수만 놓인 초라항 제사상 앞에서 반세기만에 어머니를 목메어 불러보며 회한을 토해냈다. 부자씨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죄책감에 어머니 영정을 쓰다듬으면서 울부짖었고 조카와 조카사위도 얼굴 모르는 할머니의 사진을 보며 처음으로 절을 올렸다. 하지만 이들 자매의 울분도 잠시. 흥분을 다소 가라앉힌 자매 앞에 놓여진 50여년간의 분단의 장벽은 뛰어넘기가 벅차보였다. 부자씨는 신호씨와 조카의 지나친 체제옹호적 발언이 이어지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신호씨가 남편 최기철(67)씨의 '사회주의애국희생자명예증'을 자랑하자 부자씨는 화제를 바꾸려는 듯 "언니는 시력이 여전히 좋네. 나는 안경을 안쓰면 잘 안보인다"고 답했다. 그러나 신호씨 일행이 김정일 위원장의 은덕에 감사하는 인사를 드리자고 제의하자 부자씨는 매우 곤혹스러워 했다. 신호씨는 "난 사실상 고아나 마찬가지지만 장군님께서 폭격을 받아도 다 치료해주셨다"고 자랑했고 조카사위 오경삼(30)씨는 "만민이 평등하게 잘사는 세상이 바로 우리"라고 주장했다. 어씨 조문차 들른 남측 이세웅 단장이 묵념 후 조의금을 전달하자 신호씨 일행은 "우리는 돈 없이도 산다. 우리식대로 산다"며 거절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 단장이 "남측에서는 관례적인 일"이라고 말했지만 이들은 북측 지도원의 시선을의식한 듯 막무가내였다. (금강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