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조카애들은 많이 자랐겠지요?" "시집장가가 다 잘 살고 있지" 29일 오전 금강산여관 3층 3호에서 은창, 금분, 금숙씨 등 세 동생을 만난 강일창(姜日昌.77) 할아버지는 전날 단체상봉과 만찬에서 미처 못다했던 가족ㆍ친척에대한 안부를 물으며 추억에 빠져들었다. 황해남도 연백군 2남6녀 대가족의 맏이었던 강씨 할아버지가 동생들과 헤어진것은 6.25전쟁 당시 의용군 입대를 피하기 위해 예성강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화도교동으로 피신하면서 부터다. "예성강 나루터는 옛날 그대로 있나? 동란때 어머니가 한밤중에 30리나 떨어진나루터까지 따라나와 눈물 흘리면서 날 바래주셨지. 지금도 그때 (어머니의) 모습이생각나" 남의 집에 양자로 들어갔던 둘째 덕창(71)씨와 함께 이남으로 피난갈때 어머니가 바래주시던 모습이 생각난 것이다. 동생들도 "어머니는 행복하게 사셨어요"라고대답했다. 강씨 할아버지는 이 말 한마디에 안도감을 느꼈는지 "그래, 그래, 그러셨을거야" 라며 동생들의 주름진 손을 어루만지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버지, 어머니 산소는 어디니?" "돌산 있잖습니까?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 바로 아래에 합장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죽으면 4대째가 되는구나"라고 강씨 할아버지가 조용히 읊조리자동생 은창씨는 "어서 통일이 되어야죠. 고향땅에 어서 오십시오"라고 말했다. 동생들이 "양자로 갔던 덕창 형님은 지금 뭐하세요?"라고 묻자 강씨 할아버지는"지금 나이 먹어 손자들 재롱 보면서 지내지. 너 여섯살때 보고 처음 봤는데 정말그때 모습 그대로구나"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은창씨는 강씨 할아버지가 마련해온 앨범에서 둘째 형님(덕창)의 모습을 보고 "둘째 형님이 큰 형님과 똑같구먼요"라며 처음으로 대면한 둘째 형님의 모습을 마음에 담았다. 은창씨는 또 강씨 할아버지의 딸 이름이 명숙이란 말에 "우리 얘도 명숙인데 ...서로 알지 못하니깐 이름까지 같아진 거 아닙니까?"라고 대답, 가족들은 분단의 아픔을 이름에서도 실감했다. 그렇지만 잠시후 헤어질 당시의 상황이며 살아온 얘기로 화제가 돌아가면서 분위기는 다소 딱딱해졌다. "6.25는 북측이 남침한거야. 이남 사람들은 적개심이 있지." "아닙니다, 국방군이 올라와서... 미제가 도발한 겁니다." 6.25전쟁의 발단 원인 말고도 남측 야당의 대북발언을 두고 한차례 실랑이가 오갔다. "한나라당이 우리(북측)을 걸고 들고 있지 않습니까. 한나라 안에서도 당끼리싸우고 그러니 망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 다 잘되려고 하는거야." "잘되려고 싸운다니 거참..." 그렇지만 남북 가족들은 "조카나 며느리 등 가족들이 왕래하며 통일된 조국에서살 그날을 위해 노력하자"는 말에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이산의 아픔을 달랬다. (금강산=연합뉴스)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