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생들은 날 알아보는데 난 동생들 몰라""틀림없는 동생들이예요" 허연 서리가 내린 듯한 백발의 할머니 김애란(金愛蘭.79)씨는 50여년만에 여동생 순실(67), 덕실(58.아명 뽀또)씨를 제대로 못알아봤다는 것이 미안한지 눈물을흘렸다. 시댁과 처가가 겨우 15리라는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6.25 전쟁이 터지자 한밤중 몰래 이남으로 내려오면서 연락 한번 못해보고 반세기 동안 헤어져야 했다. "너희들 아버지가 누구야?", "김백련이예요" 이 말에 "허허 맞기는 맞는구나, 너희들이 내동생이구나"라고 말문을 튼 김애란할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치면서 동생들의 손을 쓰다듬었다. "언니는 기쁜 날 왜 눈물을 흘려?", "내가 무슨 눈물을 흘린다고 해"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그동안 살아온 얘기며, 아들과 손자 얘기로 끊이지를 않았다. 어릴 때 복둥이로 불리다가 '뽀또'라는 아명을 얻었다는 덕실씨는 "언니는 꼭어머니 같애"라며 언니의 주름진 손을 마주잡고 놓을 줄을 몰랐다. 어릴 때 산딸기 가시에 눈을 찔려 실명한 둘째동생 덕실씨는 "이 기쁜 날 울기는 왜 울어"라며 "연방 옷고름으로 언니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자신의 눈물도 훔쳤다. 큰 언니인 김애란 할머니가 배가 아프다는 말에 "우린 고저 언니의 건강한 모습만 보면 돼요"라고 안쓰러운 듯 배를 쓰다듬으면서 "언니 그저 건강하게 더 오래오래 살아야 돼요. 손자는 있어요?"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손자 얘기가 화두로 되면서 테이블에서는 웃음이 넘쳐났다. "난 아들 둘이야. 손자도 있어" "난 아들 셋이야" "난 손자가 셋이야. 학교 다니고 있어요" 김애란 할머니와 순실, 덕실씨는 자식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언니 꼭 어머니 같애.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살아요" 순실씨의 이 한마디에 김애란 할머니는 "난 동생들 생각안했어. 만나 보리라고는 한번도 생각 안했어. 날 알아보니 고맙다"며 "두 동생의 손을 어루만졌다. 뒤늦게 허리병까지 얻어 거동조차 불편한 김애란 할머니는 지난 67년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남편 최원모씨 소식은 전혀 묻지 않고 반세기 전으로 돌아가 동생들을돌볼 때를 생각하며 두 동생의 손을 놓을 줄 몰랐다. (금강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