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의 차기 전투기(F-X) 사업이 1988년 소요제기 이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4년만에 미 보잉의 F-15K 도입으로 귀결됐다. 이번 F-X 사업은 평가방법의 투명성, 절충교역 비율 확대 등 나름대로 성과를거둔 부분이 있지만, 일반의 예상대로 결국 F-15K로 낙착됨으로써 `불공정' 시비가이어지는 등 명암이 교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F-X 사업에 참가한 4개 외국업체와 해당국 정부가 총력을 동원, 불꽃튀는 접전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흑색선전이 난무한데다 국민의 정부 임기말과 겹치면서 `사업 연기' 가능성마저 대두됐던 상황을 감안할 때 어느 기종이 선정됐느냐 여부를 떠나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게 됐다는데 그 1차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2001년 기종선정'이라는 목표에서 다소 지연되기는 했지만, 최소한의수준에서나마 항공전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공군의 요청은 일단 충족되게 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F-X 40대는 노후 전투기 도태에 따른 전력공백을 메우고 미래위협에 대비한 최소한의 억제전력을 확보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특히 가격과 절충교역, 기술이전 등을 놓고 4개 업체와 끈질긴 협상끝에 판로를개척하고 첨단 핵심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게 된 것도 평가할만한 대목이다. 막판까지 정부 일각에서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권의 정치적 부담을이유로 차기 정부로 넘기자는 주장도 나왔으나 사업을 연기할 경우 대외신뢰도가 추락하고, 사업비가 대폭 증가할 뿐아니라 공군의 반발 가능성 등을 감안, `비정치적'결정을 했다는 점에서 사업 확정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또한 F-15K 도입은 그 과정이 어떠했든간에 결과적으로 지난해 9.11 테러 이후한반도와 그 주변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한미동맹관계를 재확인하고 더욱 강화, 발전시킬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한미 연합전력의 `상호운용성'이라는 기술적.군사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반세기 이상에 걸친 한미동맹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는 역사적.정치적 차원에서다. 남북한간 교류와 화해.협력, 그리고 통일 등 한반도 문제는 유일한 초강대국인미국의 영향력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는 측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7일 F-15K 내정이후 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2단계 상향조정한 것이나, 임동원 대통령특사의 방북이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다소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 등도 음미할만한 대목이다. 이번 기종결정 과정에서 보여준 획득시스템의 변화도 눈에 띈다. 과거에는 기종에 대한 공군의 시험평가와 가격협상이 끝나면 이들 자료를 국방부가 보고받아 기종결정 평가를 진행, 권력의 의중을 읽어 의혹의 소지가 있었지만,이번에는 4개 전문평가기관으로 나눠 1단계 평가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국방부가 단순히 취합, 공개함으로써 `외압'의 소지를 상당히 줄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문제점도 적지 않다. 국방부는 F-15K 선정 과정에서 "투명하고 공정한평가였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결국 F-15K로 가지 않겠느냐'는 일반의 예상이 그대로 맞아 떨어지면서 처음부터 국방부가 F-15K를 민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 고위층의 외압설과 국방부-공군의 갈등설, 특정업체 밀어주기를 위한 배점변경 의혹 등이 군 안팎에서 제기된 바 있다. 1단계 기종결정 평가작업은 공정하고 투명했다고 하더라도, 그에 앞서 라팔이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기술이전 및 계약조건 부분의 비중을 낮게 잡고, 1단계 평가의 오차범위를 `3%"로 잡은 것 자체가 F-15K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일부 관측도 있다. F-X 사업에 사활을 걸었던 프랑스 다소와 국내 시민단체들은 1단계 평가의 `공정성'을 문제삼으며 강력히 반발, 당분간 후유증이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다소는 지난 4일 1단계 평가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며 서울민사지법에 2단계 평가 중지를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을 한 바 있다. 다소의 한국대행사 관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1천100만원을 받은 공군 대령에 대한 수사결과와 추후 다른 로비의혹 등이 제기될 우려도 적지 않다. F-15K에 장착할 엔진으로 일반의 예상대로 미 GE(제너럴 일렉트릭)의 F110-GE-129가 미 P&W(프랫 앤 휘트니)의 F110-PW-229를 누르고 선정된 것도 논란거리다. GE가 P&W에 비해 가격도 싸고, 절충교역도 높게 제시한 점을 국방부가 고려한것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전 세계에서 운용중인 F-15 시리즈의 경우 모두 P&W엔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다지 설득력이 있다고는 하기 어렵다. 국방부는 수차례 사고가 나 현재 운항이 중단된 KF-16의 경우 P&W 엔진결함으로밝혀졌다는 점을 그 논거로 들고 있기는 하지만, F-15K에 GE 엔진을 쓰는 것은팁?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군 안팎에서는 걱정스러운 눈길도 적지 않다. 한편 국방부는 F-15K 전투기가 도입돼도 노후 항공기인 F-5A/B, F-4D 등의 잇따른 도태에 따라 2009년부터 전력공백이 발생한다고 보고, F-15K 도입과 동시에 차차기 전투기(F-XX) 사업에 대한 계획수립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유 기자 l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