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동시에 '남한의 4월초 특사 평양 파견'을 25일 오전 발표했다. 밀사나 특사에 대해 침묵하거나 사후에 결과만을 발표해 왔던 과거 사례에 비춰보면 매우 이례적이다. 가까운 사례로 2000년 4월 남한의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 북한의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 부위원장을 만나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냈을 때도회담기간에는 비밀에 부쳐졌다가 합의(4.8) 이틀후에 발표됐다. 멀리는 지난 72년 7월 7ㆍ4 남북공동성명 발표때도 마찬가지다. 남한의 이후락당시 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김영주 당시 노동당 조직지도부장(후에 박성철 제2부수상으로 교체)의 회담 사실은 공개되지 않다가 공동성명에 명기됨으로써 알려졌다. 또 지난 92년 4월 윤기복 노동당 중앙위원이 서울을 방문, 노태우 당시 대통령을 만난 사실도 소문으로만 떠돌다가 2년후인 지난 94년 3월 제6차 남북 특사교환실무접촉 대표단의 보도문을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남북한이 왜 `남한의 4월초 특사 평양 파견'을 동시에 발표했을까. 남북 대화나회담의 장치가 없을 때 파견되던 밀사와는 달리 남북한이 일정하게 합의할 부분이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 "남북한이 이번 특사 파견으로 중단된 장관급회담 속개,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등 6ㆍ15 남북 공동선언에 바탕을 둔 무엇인가에 대해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6ㆍ15 남북 공동선언을 `조국통일의 이정표'라며 그 이행을 연일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관측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북한은 심지어 지난 1월 열린 정부ㆍ정당ㆍ단체 합동회의에서 "남조선에서 누가 집권하고 어떤 정권이 나오든 6ㆍ15북남 공동선언은 변함없이 고수되고 철저히 이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특사 파견과 유사한 경우는 2000년 9월 김용순 북한 노동당 중앙위 비서가서울을 방문한 사실이다. 북한방송은 김 비서가 서울 도착한 2시간 뒤에 `서울을 방문하기 위해 평양을 출발했다'고 전했다. 그의 서울 방문 소식이 전해질 때부터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대두됐었다. 김 비서는 서울방문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한 방문에 앞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서울 방문, 남한 국방장관-북한 인민무력부장 회담 개최 환영 등을 담은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연식기자 jy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