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과 와병으로 활동이 뜸했던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인 리두익(80) 인민군 차수가 지난 13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혁명1세대'인 그는 지난 97년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신병치료를 받기도 했으며 99년 3월 실시된 지방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이후 최근까지 모습을 드러내지않아 왔다. 김일성 주석이 지난 94년 7월 사망한데 이어 그와 함께 항일혁명투쟁에 참가했던 `혁명 1세대'들이 고령으로 인해 하나 둘씩 사라져 가고 있다. 김 주석 사망이후 그동안 11명의 혁명1세대가 사망했다. 강건군관학교 조명선 교장이 김 주석 사망직후 72세로 세상을 떴으며 권력서열2위였던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겸 군총정치국장이 95년 2월 `암성 질환'으로 78세에사망했다.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는 오 인민부력부장에게 각별한 배려를 했는데, 프랑스에병치료를 다녀오도록 했고 장례식에도 직접 참석했다. 또 95년 3월 군대장 손종준이, 그해 7월에는 김봉률 인민부력부 부부장 겸 국방위원이 77세로 사망했다. 97년 들어서는 군대장 겸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태병렬(81) 관장과 최광(78)인민무력부장이 세상을 떴다. 오진우의 뒤를 이어 인민무력부장에 오른지 15개월여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최광은 정치적 숙청과 복권을 거듭, `군부의 부도옹(不倒翁)'으로 불렸다. 98년 12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전문섭(79) 명예부위원장이, 99년 9월에는국가부주석을 지낸 리종옥 노동당 정치국 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이 83세로 사망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지난해 1월 일제 때 리을설, 전문섭 등과 함께 김 주석의 `경위대원'(호위대원)으로 활동했다는 강위룡이 87세로, 6월에는 최성숙(87)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중앙위원장이 사망했다. 이들 가운데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오진우와 최광만이 평양 대성산 혁명열사릉에안장됐으며 나머지 인물들은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한편 혁명1세대로서 현재 요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은 10여 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박성철 명예부위원장이 꼽힌다. 그는 59년에 외무상에 올랐으며 76년 총리를 거쳐 77년에는 국가 부주석이 됐으며 무려 20여년 간 이 직책을 유지하다 98년 9월에 `혁명원로' 대접을 받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으로 물러 앉았다. 그는 남북대화에도 적극 나선 경력을갖고 있다. 혁명 1세대들이 항일빨치산 투쟁을 한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북한군부에서 나름대로의 위상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혁명 1세대중 북한군부의 대표주자는 리을설 호위사령관이다. 북한 유일의 인민군 원수인 그는 30년대 후반부터 줄곧 김 주석 호위업무에 평생을 바쳐온 전형적인군인으로서 지난 84년 호위총국장이 됐다. 85년 4월 대장을 거쳐 92년 4월 인민군 차수(次帥), 95년 10월에는 인민군 원수칭호를 받았다. 북한 군부에는 그동안 13명의 차수들이 있었으나 리두익 사망으로 12명이 됐다. 이 가운데 백학림 인민보안상, 김익현 당중앙위 민방위부장, 리종산 군수동원총국장, 최인덕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 김룡연 만경대혁명학원 원장 등 5명이 1세대이다. 군부출신으로서 군수공업을 전담하는 김철만 제2경제위원장도 빼놓을 수 없다. 여성의 경우 70년 7월부터 조선혁명박물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는 황순희가 꼽히는데, 그는 6.25전쟁 당시 인민군 105탱크여단을 이끌고 가정 먼저 서울에 입성했던류경수의 처이다. (서울=연합뉴스) 김두환기자 dh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