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번 방한은 시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악의 축' 발언 이후 한반도 주변정세가 급격히 경색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국정상은 '악의 축' 발언의 원인이 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를 우선 의제로 다룰 것이 분명하다. 부시 대통령이 방한 전 북한의 재래식 무기의 위험성을 재차 강조한 사실을 감안할때 이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악의 축'과 '햇볕정책'이란 상반된 두 개념을 절충하는 작업도 진행될 것이다. ◇ 북한 대량살상무기 =부시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핵·미사일 등 북한의 WMD 확산 위협에 대처해 나가기 위한 장으로 활용하는데 주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중.일 3국 방문에 앞서 기자회견을 통해 북 WMD를 여섯차례나 언급, 한.미 정상회담 뿐 아니라 향후 대북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이 문제가 미국측의 최대관심사라는 점을 감안, 조속한 해결에 공감하는 방식으로 이에 호응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당국자는 18일 "WMD가 한반도와 전세계에 위협이 된다는데 한.미간 인식이 같다"면서 이같은 입장을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측에 전달할 방침임을 밝혔다. 김 대통령은 그러나 북한의 WMD가 반드시 대화로 해결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정부가 이 문제에 개입할수 있는 여지가 그다지 넓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는 남북간 현안이 아니라 북.미간의 현안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한이 미사일 수출중지의 대가로 미국측에 30억달러를 요구했던 정황을 감안하면 우리가 깊숙이 개입할 경우 자칫 보상의 주체가 될 가능성도 있다. ◇ 재래식 무기 =휴전선 부근에 집중배치된 북한 재래식 무기의 후방배치도 새로운 논란거리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대북협상에서 대량살상무기는 미국이 주도권을 갖더라도 재래식 무기는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주한 미군의 존재를 감안할때 미국측이 강하게 주장하면 호응하지 않을수 없는 사안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악의 축' 발언 이후 이미 두차례나 이 문제를 북측에 경고했다. 그가 북한이 내려다 보이는 도라산을 찾아 메시지를 발표하는 것도 WMD 못지 않게 재래식무기의 감축을 겨냥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 햇볕정책 지지 =부시 대통령은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확고한 지지 입장을 재확인하고 대화재개 의지를 거듭 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지난 16일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전폭 지지하고 그의 통일관에도 동의한다"고 분명히 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양국간의 시각차가 완전히 해소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철저한 상호주의와 검증을 바탕에 깔고 있다. 미국 일각에선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대북관도 너무 단순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북한이 그동안의 협상과정에서 당근만 챙기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불신감도 크다. 미국이 대테러전의 일환으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는 등 포용정책이 아닌 개입정책의 틀에 맞추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중요성은 바로 이같은 시각차를 줄이는데 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 ----------------------------------------------------------------- [ '악의축' 연설 이후 북.미 주요발언 ] < 미국 > -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1월30일) "대통령의 결정을 결행할 태세 됐있다" -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1월31일) "북한은 세계제일의 탄도미사일 장사꾼" - 콜린 파월 국무장관 (2월5일) "공은 북한의코트에 있다" - 조지테닛 중앙정보국(CIA) 국장 (2월6일) "북한이 적화통일목표 포기 증거없다" - 라이스 보좌관 (2월14일) "대북 수많은 대응수단 있다" - 부시 대통령 (2월16일) "햇볕정책지지, 북 재래식무기 뒤로 물려야" - 부시 대통령 (2월18일) "악의축 지목국가들에 모든 선택방안을 검토중" < 북한 > - 외무성대변인 (1월30일)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 - 중앙방송 (2월4일) "우리공화국을 압살하려는 기도" - 외무성 대변인 (2월5일) "미국은 미사일문제를 비위에 거슬리는 나라 압살목적에 이용" - 박길연 유엔주재북한대사 (2월8일) "언제든 북.미대화에 나설 용의" - 평양방송 (2월15일) "부시 대통령 방한 중지해야" - 중앙방송 (2월15일) "우리의 핵.미사일정책은 투명하다" - 평양방송 (2월18일) "악의축 발언은 정치문맹자의 잠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