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라(奈良)현 아스카(明日香)의 기토라고분(7세기말∼8세기초)은 "고구려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북한학자가 주장했다. 김일성종합대학의 김은택 역사학 박사는 지난 3일자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일본의 문화발전에 미친 고구려의 영향」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고 "일본의 고대문화 발전은 우리 선조들의 노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며 기토라고분에 대한 조사자료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지난 93년에 이루어진 기토라고분에 대한 제1차 조사공개에서는 무덤안 석곽내부의 북쪽벽면에 현무그림이 그려진 것이 판명돼 이 고분이 사신도(四神圖)벽화무덤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지난 98년에 있은 제2차 조사공개에서는 석곽내부의 동쪽벽면 가운데 청룡과함께 해가,서쪽벽면 가운데에는 백호와 함께 달이,석곽의 천장에는 별자리들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 알려져 "기또라고분의 벽화가 사신도를 위주로 하고 여기에 천문도를 배합한 벽화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기토라고분의 천문도와 관련, 일본 도카이(東海)대학 정보기술센터가천문도에 그려진 성좌와 별의 운행궤도, 태양의 운행을 나타내는 황도, 적도 등의천체자료를 컴퓨터로 분석해 본 결과 별자리는 일본에서 본 하늘이 아니었고 그 관측지점은 북위 38∼39도(황해도-평안남도 해당) 지역이었으며 관측시기는 기원 전후(넓게 보면 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였던 것으로 추정됐다며 이에 따라 마이니치(每日)신문은 "당시 동아시아 최첨단을 자랑하던 고구려의 선진 천문기술이 일본에 전수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 박사는 기토라고분이 고구려문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근거로 몇가지를 들었다. 우선 고분에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 점을 꼽았다. 세계적으로 볼 때 강서세무덤벽화를 비롯한 고구려의 여러 무덤벽화들에만 사신도가 다 그려져 있다는 것은 널리알려진 사실이며 이것은 기토라고분 벽화가 고구려무덤 벽화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는 것을 뚜렷이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사신도의 그림 수법이 고구려 색채를 닮았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기토라고분벽화의 주작과 현무의 그림은 매우 선명하고 지금도 잘 남아 있지만백호와 청룡의 그림은 빗물과 습기 등의 피해로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기토라고분벽화의 주작과 현무의 그림은 고구려시기의 강서세무덤의 주작과 현무그림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기토라고분 벽화에 그려진 별자리와 별들이 고구려의 높은 천문학 기술에 기초하고 있다는데 대해서는 일본 역사학계에서도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 기토라고분은 기원 7세기 후반기부터 8세기 초 사이에 건설된 것으로 보고 있다.결국 기토라고분은 6세기 전반기부터 7세기 전반기 사이의 것으로 알려진 강서세무덤보다 1세기 가량 뒤늦은 것이다. 일본의 채색화가 고구려의 유명한 화가였던 담징에 의해 7세기 초에 시작되었다는 점을 놓고 보아도 채색이 화려한 기토라고분의 사신도 벽화는 명백히 고구려의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박사는 일본의 아스카(飛鳥)문화와 그에 앞선 야요이(彌生)문화 시기(B.C 3세기 무렵-A.D 3세기 무렵)나 고분문화 시기(4세기 무렵-7세기 무렵)를 포함해 1천여년간이나 "우리 선조들은 일본열도에 진출하여 고대일본의 사회문화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면서 "사실상 당시 조선민족은 일본민족을 선진문명과 선진사회에로 이끌어 준 문명의 보급자,선도자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일본 역사학자들이 불순한 목적밑에 헛된 여론을 퍼트리며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려 하고 있다며 이같은 태도는 "자라나는새 세대들을 비롯한 일본 사람들속에 그릇된 역사관,민족관을 심어 주는 행위이며해외침략을 꿈꾸는 군국주의자들의 책동에 맞장구를 치는 망동"이라고 비난했다. 끝으로 "일본의 고대 역사뿐 아니라 과거의 범죄적 역사의 진실을 사람들에게올바로 전하고 인식시키는 것은 일본 역사학자들의 본분이며 의무"라고 그는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두환기자 dh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