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언급 이후 미국의 파상적인 대북압력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오는 20일 서울에서 열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간 정상회담이 향후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 향방을 가름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양국 정부는 특히 이번 회담에서 9.11 테러사태 이후 미국의 새로운 대외 독트린으로 정립된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를 집중 조율할 방침이어서 주목된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9.11 사태이후에도 미사일 수출을 지속적으로 계속하고있다는 증거를 포착하고 우리측에 우려를 전달하는 등 대북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어 사전 조율에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 당국자는 하지만 "우리 정부도 북한의 핵,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똑같은 입장을 갖고 있다"면서 "우리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는 것이고, 미국도똑같이 인식하고 있다"면서 한미간 이견이 없음을 강조했다. ◇북 미사일 문제 =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언급 이후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북한이 계속 첨단 미사일 수출을 확대해 오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말한 것을 비롯해 미국은 연일 `북 미사일' 위협론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일 뉴욕에서 열린 한미외무회담에서도 9.11 테러사태 이후 포착한북한의 지속적인 미사일수출 관련 움직임을 우리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9.11 테러사태 이후 미국이 테러집단, 불량국가의 WMD 위협을 차단하고 확산을방지하는데 외교.안보력을 집중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대응이 강경할 것은자명하다는게 중론이다. 미국이 미사일 문제 중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수출문제로, 부시 행정부는 동북아지역 정세 안정을 위한 중장거리 미사일 폐기문제도 거론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우리 정부는 북한 미사일 문제를 같이 우려하면서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미국의 강경대응 기조를 누그러뜨려야 할 입장이다. 북한 미사일 문제는 수출중단이 핵심으로,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한은 6차례의협상을 통해 미사일 수출중단의 대가로 최소 3년간 매년 10억달러의 현금보상, 사거리 1천500㎞ 이상 장거리 미사일 개발중단 대신 인공위성 대리발사를 요구했다. 북미 양측은 당시 일부 현물보상 방안을 타협하고, 합의직전까지 갔으나 미국의대통령선거와 정권교체로 중단되고 말했다. ◇핵, 생화학무기 = 북한 핵의 조기사찰 문제에 대한 한미간 공동대처 방안도이번 정상회담에서 심도깊게 논의될 전망이다. 과거핵 의혹 해소는 지난 92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제출한 최초보고서와 IAEA 사찰 내용간의 불일치를 규명하는 것으로, 북한은 당시 90g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고 주장한 반면 미 중앙정보국(CIA)은 최소 1-2개의 핵탄두를 제조할 수있는 ㎏단위를 추출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과거핵' 의혹의 조기규명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우리 정부도 이에 동의는 하고 있다. 다만 북미간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미사일에 이어 핵사찰 문제로 갈등이 증폭될 경우 한반도 정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미국의 최대한 `인내'를 기대하고 있어 미묘한 시각차이가 있다. 미국은 또 생화학무기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대북 압박카드도 내놓을 것으로전망돼 우리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이밖에 재래식 군비문제를 두고 여전히 자신들의 `개입'을 원하는 미국의 주장에 맞서 핵.미사일은 미국, 재래식 군비문제는 한국이 담당한다는 `역할분담론'을설득해 나가는 것이 우리 정부의 과제이다. ◇북미대화 재개 = 이번 한미 두 정상간의 만남에서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판매 문제와 함께 조속한 북미대화 재개방안도 집중 논의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 문제 역시 한미간의 시각차가 적지 않아 성과여부가 불투명하다. 우리 정부는 부시 대통령 방한시 미국측의 북미대화 재개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은 "대화재개를 위한 `당근'은 없다"는 점을 거듭 밝히고 있고,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는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상치 된다. 미국은 또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미협상 결과의 연속성을 기대하는 북한이나,북미간 대화진척을 위해 이를 바라고 있는 우리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클린턴 행정부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정책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나아가 휴전선 인근 재래식 군사력 후퇴, 미사일 수출중단 등 사실상 북한의 선(先) 행동을 요구하고 있는 어려운 상태에서 김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북미대화를 어떻게 설득할지 주목된다. 정부 당국자는 "북미간 대화를 중재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지만, 입장이 확고한 북한과 미국을 한자리에 모이게 할 뾰족한 묘안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기타 = 대북 식량지원 등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방안도 정상회담에서 거론될 전망이다. 일단 미국도 정치적인 측면과는 별도로 인도적인 문제를 접근한다는원칙을 정하고 있어 한미간 의견조율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황재훈기자 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