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무성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외교총수에 등극했던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상이 취임 9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지난해 4월 집권 자민당 총재경선 과정에서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후보의 총리 만들기에 앞장 선 공로를 인정받아 입각한 다나카 외상은 결국 고이즈미 제1기 내각에서 가장 먼저 낙마하는 비운을 겪게 됐다. 사실 다나카 외상의 퇴임은 그간 `시기''의 문제였을 뿐 기정사실화돼 온 측면이 강했다. 다나카 외상의 대중적 인기가 70% 이상을 상회하고 있기 때문에 고이즈미총리도 함부로 내치지 못했을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취임 이후 돌출 행동과 튀는 발언 등으로 온갖 구설수와 화제를 뿌리면서 고이즈미 총리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짐으로 작용해 왔다. 그는 일본을 방문한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을 만나지 않아 일본 정계를 들끓게 했으며, 일본 정부의 입장과 동떨어지게 미국의 미사일 방어계획에 불만을 표시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주요 외빈들을 위한 리셉션에 뒤늦게 나타나는 외교적 결례도 다반사였고, 자신이 아끼는 반지를 분실했다며 비서관에게 반지를 사오라는 ''명령''을 내리는 등 좌충우돌했다. 이같은 실언과 외교적 ''비례(非禮)''가 겹치면서 다나카 총리는 최대 원군이던 고이즈미 총리의 신임마저 잃게 됐다. 일본 언론은 이런 그를 두고 ''모기장 밖의 사람''이라고 지적해 왔다. 모기장 안에서 안락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물어뜯기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해 연말에는 외무성 간부들과 갈등을 빚은 다나카 외상을 지켜보다 못해 에도(江戶)시대 학자가 쓴 ''부하 다스리는 법''의 문구를 건네주는 등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다나카 외상이 최근 도쿄(東京)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 재건회의의 특정비정부기구(NGO) 불참압력의 실체를 둘러싸고 다시 한번 ''사고''를 치자 고이즈미 총리의 신임도 바닥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다나카 외상과 노가미 요시지(野上義二) 외무성 사무차관이 외압실체를 놓고 ''집안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마침내 외무성 제1, 2인자를 겨냥해 ''칼''을 빼든 셈이다. 고이즈미 총리로서는 자신의 ''성역없는 개혁''을 위해서는 국회의 예산통과가 발에 떨어진 불인데, 외무성이 이처럼 혼선을 겪고 있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연합뉴스) 고승일특파원 ksi@yonha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