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역대 대통령 관련 기록물을 정리하던중 새롭게 발굴한 통치사료들은 파란과 격변으로 점철된 우리나라 현대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것들이다. 특히 이승만(李承晩) 윤보선(尹潽善) 박정희(朴正熙) 최규하(崔圭夏)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대 정권의 권력이양 작업이 순조롭지 않게 이뤄진 탓으로 대통령 관련 통치사료가 상당부분 유실되거나 의도적으로 파기됐던 점을 감안할 때 이번 1천302건에 달하는 역대 대통령 관련자료는 현대사 복원의 소중한 재료가 될 수도 있다는게 학계의 지적이다. 아울러 이번에 발굴된 역대 대통령 관련 자료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간, 박정희 전 대통령과 린든 B 존슨 대통령간 친필서신 등 외교사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자료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 주목된다. 아울러 1968년 1월 북한의 무력도발에 의한 1.21사태 및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5.17 사건 등 역사적 사건 등과 관련된 ''공개되지 않은 사실''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청와대 관계자는 9일 "이번에 발견된 기록물들의 중요성을 감안, 관계 전문가를 초빙해 면밀한 검토작업을 거쳐 정부기록보존소로 이관해 영구보존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1천302건의 통치사료중 중요한 대목을 사안별로 정리한 것이다. ◇1.21 사태 당시 박정희의 대북응징 요구 1968년 북한에 의한 1.21사태 및 미국 푸에블로호 납북사건으로 남북 및 미북관계가 긴장상태에 있을 당시 한미 정상이 이들 사건의 처리 문제를 놓고 심각한 이견을 보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 사건이 일어난 직후인 1968년 2월 당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과 린든 B존슨 미국 대통령간에 오간 편지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즉각적인 보복공격을 취할 것을 주장한 반면 존슨 대통령은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의 귀환을 위해 북한과 비밀협상을 진행시키면서 외교적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 대통령은 68년 1월 21일 김신조(金新朝)를 비롯한 북한 124군 부대 소속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고 이틀뒤인 1월 23일 북한 해군초계정과 미그기가 북한 원산앞바다 공해상에서 정보수집중이던 푸에블로호를 납치한 사건이 일어난 직후인 2월5일 존슨 대통령에게 친필서한을 보내 북한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촉구했다. 서신에서 박 대통령은 "평화적 해결방법, 즉 외교적 수단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지는 우리의 문제"라면서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함에 있어서 평화적인 해결방법 모색은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언정 우리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53년 휴전 협정 체결이후 58년 사건 당시까지 북한이 5천여차례에 걸쳐 휴전협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적시하면서 "공산주의자들에 대해선 그들의 침략행동이 반드시 적절한 응징(due punitive action)을 받게 된다는 교훈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2월 9일자 서한에서도 "북한에 대한 한국국민의 규탄감정은 지금 절정에 도달해 있다"면서 ▲가까운 시일내에 서울 습격문제를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에 다뤄야 하며 ▲북한에게 시인과 사과를 받고 재발방지를 다짐받아야 하며 ▲북한이 이에 불응할 경우 한미 양국은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즉각 보복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존슨 대통령은 2월 9일 박 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사이런스 밴스전 국방차관을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개인특사로 서울에 파견했다는 사실만을밝힌채 박 대통령의 대북 군사응징 요구에 대해선 언급을 회피했다. 그는 또 2월 28일자 편지에서도 "밴스씨는 평양정권의 위협과 침략행위로 야기된 사태에 대한 각하의 우려와 견해에 관해 상세한 보고를 했다"면서도 "본인 역시 이 사태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으나 고려해야 할 점이 많이 있다"면서 대북 군사행동에 대해 우회적으로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다. 1.21 사태는 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부대 소속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고 정부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 근처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이며 푸에블로호 사건은 같은해 1월 23일 북한 해군 초계정과 미그기가 원산 앞바다공해상에서 승무원 83명을 태운 미국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납치한 사건이다. ◇5.17 전후 최규하의 국정장악력 상실 10.26 사태로 유신정권이 붕괴한 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장군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 민주인사들을 체포한5.17 사태를 전후해 최규하 대통령의 의전일지가 거의 공란으로 비어있다는 점에도 사료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당시 의전일지에 따르면 최 대통령은 원유가 폭등에 대처하기 위해 5월 10일 출국해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를 방문하고 5월 16일 오후 10시10분 김포공항에 도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정작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17일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 18일은 물론 21일까지 닷새동안 최 대통령이 어떤 행사에 참석했다거나 정부 요인 또는 군관계자나 민간인을 접견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다만 5월 22일에 이르러서야 최 대통령이 박충훈(朴忠勳) 총리서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것으로 돼있다. 이는 당시 최 대통령이 신군부의 위세에 눌려 대통령으로서의 권한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거나 사실상 외부인사들과의 접촉이 철저히 차단돼 있었음을 입증하는 자료로 볼 수 있다. ◇50년대 북한 ''핵보유설'' 관련자료 미국측이 1957년 당시 북한 공산군이 핵무기와 유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던 ''남북한 군사력 비교 보고서''도 관심을 모은다. 미국측 군사전문가에 의해 작성돼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보고서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1953년 휴전협정 이후 중공군이 북한에서 완전히 자진철수했다고 선전하고 있으나 이는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군사력이 남한의 군사력 보다 열등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 휴전 이후 북한 공산군은 약 19만4천명의 병력을 증강, 총 80만5천73명의 군대를 보유함으로써 대한민국 국군 및 유엔군 병력(75만7천601명) 보다 5만명 가량 많다고 분석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북한이 공군기지 건설, 초현대식 제트기 및 기폭탄, 박격포 및 대공포 도입 등으로 휴전협정을 어기고 있으며 특히 "게다가 현재 북한 공산군은 핵무기와 유도 미사일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In addition the Commnist Forces are now reported to possess an atomic and guided missile capabilities)"고 지적했다. ◇이승만의 `원조 정상외교'' 이승만 대통령이 1953년 한국전쟁 종전 직후인 1954년 당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교환한 수차례의 외교서신은 당시 이 대통령이 파탄지경에 도달한 경제를 살리고 북한에 비해 열등한 군사력을 만회하기 위해 애국심을 바탕으로 ''굴욕에 가까운 정상외교''를 펼쳤음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예컨대 이 대통령은 1954년 12월 8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은 지금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맞아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면서 미국에 대해 경제.군사적인 원조를 요청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미군과 유엔군의 3분의 2가 휴전 이후 철군함으로써 군사력이 크게 약화됐으며 ▲북한군의 끊임없는 공작원 남파는 심각한 상태라고 지적하면서 "나는 매일 우리의 국력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신에게 기도하고 있다"는 말로 편지를 맺고 있다. 이에 앞서 이 대통령은 같은해 3월 11일, 11월 5일, 11월 29일에도 각각 아이젠하워에게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 "서울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100만명 이상의 중국 인민군과 수십만명의 북한군이 대한민국을 침략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며 지원을 호소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1953년 11월 16일과 12월 23일 이승만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나는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의 국력과 군사력이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데 관심이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대한(對韓) 지원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한편 이 대통령이 1959년 당시 미국에 유학중이던 양아들 이강석군에게 수차례 사신을 보내 건강과 안부를 묻는 편지도 발견됐다. ◇육영수여사 관련자료 이번에 발견된 통치사료에는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에서 거행된 광복절 기념식에서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文世光)이 쏜 총탄에 의해 박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陸英修) 여사가 사망한 이후 각국 사절이나 외교관이 보낸 조전과 우리 정부의 답신, 육 여사가 각국 정상부인들에게 보낸 서한도 포함돼있다. 육 여사는 1967년 7월 7일 사토(佐藤) 당시 일본 총리의 부인으로부터 장난감 선물을 받고 "재미있는 장난감을 보내줘 우리 지만(박 대통령의 외아들)이가 크게 기뻐하고 있다"는 답신을 보냈다. 또 64년 11월 16일에는 장개석 당시 대만총통 부인에게 손수 마련한 고려인삼과 토종꿀을 보내면서 "국가의 중책을 맡고 있는 장 총통의 피로회복에 효력이 있을 것"이라고 편지를 보내는 등 외교적으로도 내조를 아끼지 않았음이 드러나고 있다. ◇군정연장과 한일수교에 대한 케네디 서한 1963년 3월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박정희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이 4년간 군정을 연장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한국내 정치지도자들의 합의에 의한 해결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이번 통치사료에서 밝혀졌다. 케네디 대통령은 63년 3월 31일 박 의장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본인은 한국에서의 최근 사태발活?매우 면밀하게 검토해왔으며 한국이 당면한 어려움을 해결할 방도가 강구돼야 한다는데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면서 "한국내 정치문제에 대한 해결은 한국국민 전체에게 납득될 만한 민정이양 절차에 관한 합의의 도달을 위해 귀국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이 협의함으로써 이뤄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케네디 대통령은 62년 8월 23일 박 의장에 보낸 서신을 통해 "귀국과 일본간의 관계 정상화 문제를 토의했던 작년 11월 워싱턴에서의 회담 이래 본인은 자주 이 문제를 생각했다"면서 "각하께서 한.일 양국과 미국 및 자유세계에 대한 해결의 중요성을 충분히 파악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으며, 두 나라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각하의 노력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며 한.일 국교정상화를 촉구했다. ◇미국측의 월남전 참전 요청 존슨 대통령이 1965년 중반 이후 월남전이 본격화되자 박 대통령에게 수 차례 친서를 보내 한국군 전투병력의 월남전 파병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으며 박 대통령은 경제적 이득과 한반도 안보 등을 고려해 이를 적극 수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존슨 대통령은 65년 7월 25일 박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에서 "아직 최종결정이나지 않았지만 현재 월남에 있는 병력 8만명을 배 또는 그 이상으로 증가해야 된다는 것이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한국군의 참전을 우회적으로 요청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같은해 7월 29일자 답신을 통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월남을 공산침략으로부터 수호해야겠다는 각하의 그 정의로운 결의는 공산침략의 가능성 속에 살고 있는 수억명의 자유 애호 약소민족에게 큰 고무와 용기를 줬다"면서"한국정부도 이미 사단규모의 전투병력을 월남에 증파할 계획을 추진중이며 늦어도다음달 중에는 국회의 승인을 얻게 될 것"이라고 파병요청에 응했다. 이후 박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서한을 교환하면서 월남전 문제를 긴밀하게 협의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66년 3월 23일자 편지를 통해 "한국군 증파 문제에 대해선 여러가지 논란도 많았고 국회에서도 장시일에 걸친 토론이 있었으나 3월 21일 이 법안이 압도적으로 국회를 통과하게 돼 4월과 7월에 전투단과 전투사단이 월남전에 참가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병력증파에 앞서 박 대통령은 66년 3월 7일 당시 브라운 주한 미대사를 통해 미국측에 한국군 장비현대화, 차관제공, 장병의 처우개선 등 14개 항에 걸친 선행조건을 제시, 이른바 `브라운 각서''를 받아낸뒤 전투병력을 추가파병했다. ◇`닉슨 독트린''에 대한 박정희의 한반도 안전보장 요구 1969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을 자제하고 경제원조 중심으로 아시아 국가들을 돕겠다는 내용의 이른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자 박 대통령은 71년 4월 15일 닉슨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한반도에선 `닉슨 독트린''을 신중하게 적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이 편지에서 "힘의 진공상태 또는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태가 유동적이고 위험성이 많은 아시아지역에선 ''닉슨 독트린''이 신중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한국 국방력의 강화와 경제발전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아시아 및 태평양지역의 전반적인 안전보장을 위해 미국의 계속적인 대한(對韓) 지원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재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