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15일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일제침략과 탄압의 상징인 '서대문 독립공원(구 서대문형무소)'을 방문, 과거 일제의 만행현장을 둘러보고 추모비에 헌화했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의 항의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날 오전 당초 예정보다 5분 정도 이른 9시15분께 서대문 독립공원에 도착한 고이즈미 총리는 이정규(李政奎) 서대문구청장의 안내를 받으며 서대문형무소 역사전시관을 12분간 관람했다. 관람에 앞서 고이즈미 총리는 방명록에 시경(詩經) 구절을 인용, '사무사(思無邪.평소 마음과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의 전시관 관람장면은 일체 언론에 공개되지 않아 취재진들의 항의를 샀으며 우리 정부측은 "일본과 그렇게 합의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독립공원 관계자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특히 유관순열사의 투옥장면을 비롯, 물고문.전기고문.성고문 등 밀랍인형으로 생생히 재현한 일제의 잔행행위를 진지하게 둘러봤다고 전했다. 이어 고이즈미 총리는 일제시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유관순 열사, 안창호 선생 등 90명의 애국선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추모비 앞에서 헌화하고 두 손을 모아 묵념한 뒤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고이즈미 총리는 두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비통한 마음으로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 지 모르겠다"며 "일본 총리로서 처음 여기 한국을 방문해서 불미스런 과거의 일부를 봤다"며 원고없이 말을 이어갔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데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마음으로부터 사과하는 마음으로 여러 시설을 봤다"고 언급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특히 "외국으로부터의 침략, 조국분단 등 참기 힘든 곤경, 많은 수난 속에서 (한국 국민이) 받은 고통은 저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고이즈미 총리는 "과거 불행했던 역사를 직시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위해 앞으로 두나라가 협조할 수 있는 분야에서 협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미일관계를 빗대어 "일본은 일미관계 못지않게 한국과도 우호적인 훌륭한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특히 테러 대처와 내년 월드컵의 성공적 공동개최를 위한 양국간 협조를 역설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오늘 많은 것을 생각해 봤다. 많은 것을 반성했고 좋은 공부가 됐다"며 15분 동안의 발언을 마쳤다. 고이즈미 총리가 많은 애국열사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서대문 독립공원을 방문하는 동안 하늘도 순국선열들의 넋을 위로하듯 잔뜩 찌푸려있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수기자 bingsoo@yna.co.kr